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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외교기밀 문서 공개…'임종석 도운 임수경 방북'은 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989년 6~8월 무단 방북한 임수경씨가 평양 대동강변에서 평양시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1989년 6~8월 무단 방북한 임수경씨가 평양 대동강변에서 평양시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외교부가 1989년도 생산된 외교 문서의 기밀을 해제하면서 그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임수경 무단 방북 사건 관련 문서는 비공개해 논란이 일고 있다.

1989년도 외교문서 23만 쪽 기밀 해제하면서 #'임수경 방북 사건' 관련 문건은 비공개 결정 #임종석 등 현 정부 인사 포함돼 비공개 지적에 #외부 위원 "정치적 해석, 외교적으로 민감해서" #노태우 정부, 헝가리 수교위해 차관 제공 확인

31일 외교부는 총 1577권(23만 6900여 쪽) 분량의 외교 문서의 기밀을 해제했다. 그런데 그해 언론의 이목이 쏠렸던 임수경씨 방북 사건 관련 문서는 정작 극히 일부만 포함됐다.

임수경 씨는 그해 89년 6월 30일부터 8월 15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던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로 참석했다. 서울에서 일본 도쿄로 관광 목적으로 출국한 뒤 독일 서베를린과 동베를린, 러시아 모스크바를 거쳐 평양으로 들어가는 '우회 루트'를 이용했다. 이후 8월 15일 판문점을 통해 귀국한 직후 체포됐다.

이처럼 임씨가 해외 여러 나라를 거쳐 방북했지만 이번 외교문서 공개 대상에는 관련 내용이 거의 없었다. 외교부에 따르면 임씨와 직접 관련이 있는 문서 한 권(약 160쪽 분량)이 있었지만, 외교문서 공개심의를 거쳐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그해 8월 유엔 인권소위원회에 참석한 북한 대표단이 "임수경 투옥과 한국 좌파 학생들에 대한 탄압을 비판했다" 등 내용만 일부 담겨있다.

1989년 8월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임수경씨(가운데 빨간 티셔츠)가 민간인 최초로 판문점을 걸어 귀환하고 있다. 오른쪽은 임씨를 돕기 위해 방북했던 문규현 신부. [중앙포토]

1989년 8월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임수경씨(가운데 빨간 티셔츠)가 민간인 최초로 판문점을 걸어 귀환하고 있다. 오른쪽은 임씨를 돕기 위해 방북했던 문규현 신부. [중앙포토]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당시 사건과 관련해 현 정권 관련 인사들의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어 외교부가 공개를 꺼린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당시 전대협 3기 의장이었고, 임 전 실장은 불법 방북을 도운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체포돼 5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정권 인사들이 관련돼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방북 사건 관련 주요 문건은 통일부가 관리하고 있고, 외교부는 문서철 한 권 분량에 불과했다”며 “임씨가 판문점으로 귀국하는 과정에서 미국·일본과 외교적으로 협의한 내용 등이 담겼다”고 덧붙였다.

심의에 참여했던 한 외부 인사도 "현 정권 인사들을 고려했다는 건 지나치게 정치적인 해석"이라며 "사료를 직접 검토했지만, 미국 등과 협의하는 과정이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고 판단해 비공개했다"고 밝혔다. 이 인사는 "임수경씨 방북 사건과 관련된 핵심 정보는 당시 정보기관이 총괄했기 때문에 외교부가 다룰 수 없는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라고도 설명했다.

'공공기관 정보공개법'과 '외교문서공개 규칙'에 따르면 외교문서 기밀해제는 공개심의회의를 거쳐야 한다. 현재 전직 공관장과 대학교수 등 7명이 6단계에 걸친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공공기관 정보공개법 9조 2항은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을 경우'엔 외교 관계 사항을 공개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는 정보도 비공개 대상이다.

1994년 아르헨티나 5월 광장 어머니회 소속 회원들이 임종석, 임수경씨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1994년 아르헨티나 5월 광장 어머니회 소속 회원들이 임종석, 임수경씨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이 때문에 외교부는 그동안 민감한 문건은 "현재 외교에 영향을 미친다"며 비공개 결정을 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외교문서 공개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는 이유다.

이번에도 관심이 집중된 사안을 굳이 비공개해 오해를 샀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외교부는 이날 "임씨 개인 신상과 관련된 내용"이라는 설명도 했는데, 임씨가 공인이라는 점에서 맞지 않는 해명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올해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노태우 정부 시절 첫 동구권 외교 관계 수립국이었던 헝가리와의 수교 과정이 상세하게 공개됐다. 헝가리와 외교 관계 수립을 하기 위해 정부는 6억 5000만 달러 규모의 경제 협력을 약속했고, 이중 1억 2500만 달러는 은행 차관 제공 방식으로 선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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