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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 8명 ‘셀프 제명’에 제동…공천ㆍ비례정당에도 후폭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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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셀프 제명’을 통해 바른미래당(현 민생당)을 탈당한 비례대표 의원 8명에 대해 법원이 16일 제동을 걸면서 이들의 탈당은 일단 무효화됐다. 민생당 당적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런데 8명 중 일부는 이미 탈당 후 미래통합당에 합류해 공천을 받아둔 터라 혼란이 예상된다. 또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비례 연합정당과 통합당의 비례 위성 정당 미래한국당의 총선 후 의원 재배치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바른미래당 이동섭, 김삼화, 김수민, 신용현, 이태규 임재훈 김중로 의원이 지난달 18일 오전 국회 의사과에 제명서를 접수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바른미래당 이동섭, 김삼화, 김수민, 신용현, 이태규 임재훈 김중로 의원이 지난달 18일 오전 국회 의사과에 제명서를 접수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서울 남부지법(부장 김태업)은 민생당이 제명절차 취소를 요구하며 낸 가처분 신청에 대해 “2월 18일자 제73차 의원총회 결의는 그 결의와 관련한 본안판결 선고시까지 그 효력을 정지한다”고 16일 밝혔다.

지난달 18일 열린 바른미래당 의원총회에서는 비례대표 의원 9명(김삼화ㆍ김중로ㆍ김수민ㆍ신용현ㆍ이동섭ㆍ이상돈ㆍ이태규ㆍ임재훈ㆍ최도자)에 대한 제명 의결이 이뤄졌다. 의총에 참석한 의원은 이들 9명을 포함해 총 13명이었다. 때문에 의원직 유지를 위해 스스로를 당에서 제명하는 ‘셀프 제명’이란 말이 나왔다.

민생당에 그대로 합류한 최도자 의원을 제외한 8명은 의결 직후 국회에 당적변경신고서를 냈다. 이후 김삼화ㆍ김중로ㆍ김수민ㆍ신용현ㆍ이동섭ㆍ임재훈 의원은 미래통합당에, 이태규 의원은 국민의당에 입당하고, 이상돈 의원은 무소속으로 남았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5차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손 대표는 지난 18일 안철수계 의원등 비례대표 9명이 의원직을 잃지 않는 제명 형식의 '셀프 제명'을 두고 "당헌·당규와 정당법을 위반한 무효행위"라고 말했다. [뉴스1]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5차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손 대표는 지난 18일 안철수계 의원등 비례대표 9명이 의원직을 잃지 않는 제명 형식의 '셀프 제명'을 두고 "당헌·당규와 정당법을 위반한 무효행위"라고 말했다. [뉴스1]

그러나 의총 당시 당을 이끌던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는 해당 의결이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당헌상 당원 제명은 윤리위원회 징계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과정 없이 의총 의결만으로 제명을 할 순 없다는 논리였다. 이후 바른미래당이 통합에 참여해 탄생한 민생당은 지난 4일 최도자 의원을 제외한 8명에 대한 제명절차 취소 가처분 신청서를 법원에 냈다.

강신업 민생당 대변인은 16일 법원 결정 후 “셀프 제명 효력 정지로 비례대표 8명은 민생당 당적을 갖게 됐고 기존 민생당 의원 18명에 8명이 복귀함에 따라 26명으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미래통합당과 국민의당도 계산이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삼화ㆍ김중로ㆍ김수민ㆍ이동섭 의원은 이미 통합당 후보로 지역구 공천을 받았고, 신용현 의원도 공천을 위한 경선에 참여 중이기 때문이다. 또 이태규 의원은 아직 공천을 받진 않았지만, 국민의당 비례대표 후보 공천을 신청한 상태다.

최도자 의원이 지난달 18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의원총회를 마친 뒤 회의 자료를 들고 있다. 임현동 기자

최도자 의원이 지난달 18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의원총회를 마친 뒤 회의 자료를 들고 있다. 임현동 기자

공직선거법 제47조에 따르면 정당은 소속 당원을 후보자로 추천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이 다시 공천을 받으려면 먼저 민생당을 탈당한 뒤 통합당과 국민의당에 재입당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면 비례대표 의원직은 잃게 된다. 또 각 지역에서 공천을 두고 경쟁한 상대 후보자들의 반발도 뒤따를 수 있다. 김정화 민생당 공동대표는 “의원 스스로 자신을 제명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코미디였다. 사필귀정이다”고 말했다.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이번 법원의 판단이 향후 비례대표 의원 제명 관련 주요 판단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비례 연합정당에 참여하는 민주당과 이미 미래한국당을 만든 통합당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비례연합 출범의 전제는 여러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들이 하나의 플랫폼 정당으로 헤쳐모인 후 총선에서 당선되면 각자의 정당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비례연합으로 당선된 뒤 원래의 당으로 원대 복귀하려면 선거법상 정당 해산 또는 제명을 해야 한다. 이 중 정당 해산의 경우 비례 연합명부의 효력이 상실돼 유사시 다음 순번 후보의 의원직 승계가 불가능하다. 예컨대 연합명부가 30번까지 작성돼 20명이 당선됐다고 한다면, 이들의 의원직은 비례연합 해산 이후에도 유지되지만, 이들이 어떠한 이유로 의원직을 박탈당하거나 상실했을 때는 21번 후보의 승계 없이 공석으로 남게 된다.

결국 원대복귀한 비례대표의 유사시 의원직을 후순위 후보가 이어받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비례 위성정당을 ‘유령정당’ 형태로라도 유지시켜둔 상태에서 모(母)정당이 의원 2분의 1 이상의 동의를 구해 제명처리를 하는 방식 뿐이다. 이날 법원의 결정은 의원 2분의 1 이상 동의 등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셀프 제명’하는 방식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왼쪽)가 지난달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지난 18일 셀프 제명한 최도자 의원. 임현동 기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왼쪽)가 지난달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지난 18일 셀프 제명한 최도자 의원. 임현동 기자

비례대표 당선 후 통합당으로 복귀를 꾀하는 미래한국당도 비슷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강신업 민생당 대변인은 “비례정당 소속 후보자들이 당선 후 각 당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편법이 벌어질 것”이라며 “하지만 이는 비례대표의 존립 근거가 정당에 있다는 법원 결정 취지와 맞지 않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비례연합을 이 순간 멈춰야 하고, 미래한국당도 불법정당ㆍ위성정당ㆍ좀비정당 (추진을) 당장 끝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정민ㆍ하준호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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