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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홈런에는 철학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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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의 홈런에서 힘과 기술만이 아니라 '철학'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의 방망이에 '나에게로의 도전'이라는 철학을 담았고, 그 철학을 소신과 용기로 실천했다. 400홈런은 그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이다.

1995년 프로 입단 때부터 지금까지 이승엽이 걸어온 길을 보면 '남(상대)을 이길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이겨야 한다' '도전은 나의 힘이다'라는 철학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경북고를 졸업하던 해 한양대 진학을 원했던 부모의 뜻을 거스르고 수능시험장을 제 발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삼성에 입단했다. 프로야구 선수로의 도전이었다.

입단 3년 만에 홈런왕(97년.32개)이 된 그는 98년 '외풍'에 자존심을 긁혔다. 그는 외국인선수 타이론 우즈(당시 OB)에게 홈런왕을 내줬다. 이승엽은 우즈와 치열한 레이스를 벌이다 38-42로 역전당한 뒤 "우즈에게 진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졌다"고 했다. 여기서 그의 철학이 드러난다.

그렇게 이승엽은 자신을 채찍질했고, 2위에 안주하지 않았다. 99년, 이승엽은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50홈런을 넘어섰다. 이승엽은 그해 54개를 때렸지만 아시아 최고기록(오 사다하루.55개)에 미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고 또 도전했다. 그리고 3년 뒤, 그는 기어이 시즌 56개의 홈런을 때려 왕정치의 기록을 넘어섰다.

그해 겨울 '아시아 홈런왕' 명함을 갖고 메이저리그를 노크한 이승엽은 싸늘한 빅리그의 시선에 울며 돌아섰다. 그때 부모와 관계자가 모두 삼성에 남길 원했지만 그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여기서 이룰 것은 다 이뤘다. 삼성에 남으면 내가 야구하는 목표가 없어진다"며 지바 롯데로 갔다. '안주(安住)는 미래를 닫는 셔터'라는 그의 소신에 따른 선택이었다.

일본에서 2년 만에 30홈런 타자로 올라서는 과정은 고행이었다. 지바 롯데 밸런타인 감독의 '반쪽 선수' 평가에 그는 때론 벤치를 지켰고, 때론 2군으로 내려갔다. 그때 이승엽은 좌절하지 않고 재도전했고, 감독보다는 자신을 탓했다. 그리고 올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세계가 알아주는 홈런타자'가 됐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팀을 옮길 때, 그는 또 한번 '자신만의 길'을 갔다. 모두가 가시밭길이 될 거라고 했지만 그는 당당하게 일본야구의 심장으로 쳐들어갔다. 그때 아버지 이춘광씨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승엽이다. 나도 말리고 싶지만 승엽이는 자신이 택한 길로 갈 것이다"고 했다. 그는 모험을 건 만큼 노력을 몇 배 더 했고, 모두의 예상을 뒤엎어 버렸다. 그는 당당한 일본야구의 홈런왕이다.

이승엽의 400홈런. 그 하나하나에는 분명 '혼(魂)이 담긴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그의 소신, '나에게로의 끝없는 도전'이라는 그의 철학이 담겨 있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관련화보]이승엽 400·4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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