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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발 오그라든 저주 그렸다···1000만 감독표 첫 드라마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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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드라마 ‘방법’에서 백소진(정지소)이 복수를 위해 진종현 회장(성동일)을 찾아간 장면. [사진 tvN]

드라마 ‘방법’에서 백소진(정지소)이 복수를 위해 진종현 회장(성동일)을 찾아간 장면. [사진 tvN]

네 눈에는 피눈물이 흐르고, 사지가 뒤틀려 죽을 것이다. 저주를 퍼붓는 말인 줄로만 알았던 모습이 실제 눈앞에 펼쳐진다면 어떨까. tvN 월화드라마 ‘방법’은 그 충격적인 형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누구든 사진, 한자 이름, 소지품만 있으면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10대 소녀(정지소)와 사회부 기자(엄지원)가 ‘저주의 숲’ 서비스를 운영하는 IT 기업 회장(성동일), 그 뒤의 무당(조민수)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는 이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일본 귀신이 깃든 방법사와 한국 무당이 대결을 펼치는 새로운 오컬트의 장을 열면서 시청률은 1회 2.5%(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에서 10회 6.1%로 2배 넘게 뛰었다.

오컬트 ‘방법’으로 첫 드라마 극본 도전 #“동서양 융합, 한국 장르물 주목받는 시대” #‘부산행’ 4년 뒤 그린 영화 ‘반도’ 여름 개봉 #웹툰·애니 오가는 동력 “새 플랫폼에 관심”

이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쓴 사람은 다름 아닌 연상호(42)다. 1997년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해 영화 ‘부산행’(2016)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연 감독의 첫 드라마 집필이다. 어떻게 수단과 방식을 뜻하는 방법(方法)이 아닌 저주로 사람을 해하는 주술로서의 방법(謗法)을 떠올리게 됐을까. 전화로 만난 그는 “어릴 적 할머니한테 들었는지 전래동화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데 물건을 훔쳐간 아이가 사람들이 방법 한다고 하자 무서워서 자백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체 손발이 오그라진다는 건 어떤 걸까 생각했다”고 했다.

극 중 무당 진경(조민수)이 방법사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굿을 하는 장면. [사진 tvN]

극 중 무당 진경(조민수)이 방법사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굿을 하는 장면. [사진 tvN]

이후 사극에서 중전이 저주 인형을 사용하는 장면이나 인터넷상에서 특정 인물을 공격할 때 등장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옛날 주술이 현대 인터넷 사회에서도 통한다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드라마 제안을 받고 슈퍼히어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는데 보다 특별한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방법을 떠올리게 됐죠. 히어로와 오컬트, 미스터리를 섞으면 뭔가 색다른 게 나올 것 같았거든요. 초자연적인 힘과 혐오 사회라는 동시대적인 문제를 함께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옛날 주술이 인터넷서도 통하는 게 신기”

덜컥 수락하긴 했지만 영화와 드라마의 집필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영화가 시나리오 100페이지 내에 어떻게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이라면, 12부작 드라마는 12개의 이야기가 각자 완결성을 가지면서도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한다”는 것. “TV 애니메이션을 보면 마지막에 ‘다음 주에 계속’이라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만화책 단행본을 사서 볼 때도 2~3달은 기다려야 하고. 그렇게 기다릴 때 기분을 반영하려고 했어요.”

전종현 회장(성동일)이 방법 당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 [사진 tvN]

전종현 회장(성동일)이 방법 당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 [사진 tvN]

신선한 설정에 비해 캐릭터가 다소 단선적인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조민수ㆍ성동일 등은 그야말로 신들린 연기를 보여주지만, 대결 구도가 반복되면서 개연성이 떨어지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에 연 감독은 “초반에 캐릭터가 힘을 받기 위해 구성을 그렇게 해 놓은 것”이라며 “그동안 깔아놓은 밑밥이 후반부에 모두 밝혀질 것”이라고 답했다.

‘방법’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김용완 PD, 연상호 작가, 엄지원 배우. [사진 tvN]

‘방법’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김용완 PD, 연상호 작가, 엄지원 배우. [사진 tvN]

연출을 맡은 김용완 PD와는 이번이 첫 만남이다. 영화 ‘챔피언’(2018), 웹드라마 ‘우리 헤어졌어요’(2015)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활동해 온 베테랑이다. 연 감독은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내가 쓴 극본을 다른 사람이 연출하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제 영화도 100% 제가 생각한 대로 나오지 않을뿐더러 다른 사람들과 협업한 결과물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예를 들어 손목의 흉터가 핏줄처럼 뻗어 나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저는 생각하지 못한 그림이었거든요. 극본에 그림을 따로 첨부하진 않았지만, 감독님과 작업할 때 참고한 이미지를 보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반도’, 부산행’과 전혀 다른 이야기 될 것

영화 ‘부산행’ 4년 뒤의 폐허가 된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하는 신작 ‘반도’. [사진 NEW]

영화 ‘부산행’ 4년 뒤의 폐허가 된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하는 신작 ‘반도’. [사진 NEW]

일찌감치 대본을 탈고한 연 감독은 “시청률 3%만 넘어도 시즌 2를 만들 것”이라고 공약한 터였다. 그는 “드라마 시즌 1에서 이어지는 영화와 다시 영화에서 이어지는 시즌 2를 계획 중”이라고 했다. 영화 역시 연속성을 위해 김용완 PD가 메가폰을 잡는다. 올여름 개봉을 앞둔 연 감독의 영화 ‘반도’는 ‘부산행’의 4년 뒤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부산마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돼 폐허가 된 반도를 탈출하는 이야기로, 프리퀄에 해당하는 애니메이션 ‘서울역’(2016)과 세계관을 공유한다. 강동원ㆍ이정현ㆍ권해효 등이 출연하며, 북미ㆍ유럽 시장에 선판매되는 등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세계관을 토대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 감독은 “그 세계에서 더 나올 이야기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고 했다. “‘방법’은 캐릭터가 중요한 이야기이지만, ‘부산행’의 주인공은 좀비잖아요. 각각의 캐릭터가 어떻게 됐을까보다 좀비 이후의 사회가 어떻게 됐을까가 더 궁금하지 않을까요. ‘반도’는 ‘부산행’과 관점은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거예요.” 지난해 가을 촬영을 마친 이후 컴퓨터그래픽(CG) 등 후반 작업이 한창이다

“서브컬처 애호가 작업하기 좋은 환경 돼”

웹툰 '지옥'. 연상호 감독이 글을 쓰고, '송곳'의 최규석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사진 네이버웹툰]

웹툰 '지옥'. 연상호 감독이 글을 쓰고, '송곳'의 최규석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사진 네이버웹툰]

최근 네이버에서 1부 연재를 마친 웹툰 ‘지옥’도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연 감독이 글을 쓰고, ‘송곳’의 최규석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각각 서양화와 만화학을 전공한 두 사람은 상명대 재학 시절부터 함께 의견을 주고받으며 작업해 왔다. 연 감독은 “드라마 산업이 워낙 격렬하게 바뀌고 있는 시기여서 좋은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 드라마 연출에도 도전하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새로운 플랫폼에 맞는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더 관심이 많다”고 했다.

“전 세계적으로 장르물을 폭넓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아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좀비물은 안된다고 했는데, 서브컬처를 즐기는 수용자가 순식간에 늘어난 거죠. 동서양의 특성이 혼합된 한국형 공포물에 대한 수요도 있고, 저 같은 사람이 작업하기 좋은 환경이 된 것 같아요. 한국에서 장르 영화는 이제 시작인 셈이니까요. 앞으로 그려보고 싶은 세계가 많긴 한데, 첨단기술과 반문화적 성격이 결합한 사이버펑크도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같은 SF라 하더라도 저는 스팀펑크에는 별로 관심이 없거든요. 하하.”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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