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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100만원씩' 이게 될까? '코로나 소방수' 떠오른 기본소득

중앙일보

입력

8일 브리핑 하는 김경수 경남지사. [사진 경남도]

8일 브리핑 하는 김경수 경남지사. [사진 경남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재난 기본소득' 주장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극복을 위해 국민 모두에게 돈을 쥐여주자는 얘기다. 코로나19에 감염된 한국 경제가 '재난'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반면 재원 조달 가능성,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에는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기본소득 도입을 들고 나왔다. 김 지사는 8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국민에게 재난 기본소득 100만원을 제공할 것을 제안한다"며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투자해야 효과가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이재웅 쏘카 대표는 지난달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주장한 데 이어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여야 광역자치단체장·정치인 등도 이에 호응 중이다.

추가경정예산안(추경) 발표 이후에도 '재난 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거론하는 금액도 계속 오르고 있다. 이재웅 대표는 국민 1인당 '50만원'을 언급했지만, 김 지사는 이보다 두 배 많은 '100만원'을 제시했다. 정부는 소비쿠폰·아동수당 확대 등 기본소득 성격의 예산을 이미 편성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소비 진작을 위해 추가적인 현금 지급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재웅 쏘카 대표는 지난달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극복을 위해 1인당 50만원의 '재난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주장했다. 뉴스1.

이재웅 쏘카 대표는 지난달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극복을 위해 1인당 50만원의 '재난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주장했다. 뉴스1.

재난 기본소득 주장, 왜 나오나 

기본소득은 소득 수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이 정책을 감염병 확산 시기에 한해 도입하자는 것이다. 이 제도의 효과는 신속성이다. 기존 복지 제도처럼 재난 피해자·저소득층을 선별하는 작업을 생략하고 모든 국민에게 일괄 지원하기 때문에 빠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재래시장 등 다중이 모이는 곳에 나가서 써야 하는 소비쿠폰이 아니라 현금으로 직접 지급하면 온라인 거래에서도 활용할 수 있어 방역에도 유리하다. 이번 추경에 반영한 상품권 지급, 세액 공제, 대규모 소비 행사 개최 등의 형식보다 현금 지급이 낫다는 주장이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나오는 이유다.

51조 재원 조달, 가능할까 

문제는 기본소득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이냐다. 김 지사 제안처럼 전 국민에게 100만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51조원가량의 나랏돈(재정)이 들어간다. 이는 올해 편성한 추경(11조7000억원) 규모의 5배에 육박한다. 금융위기 대응을 위해 편성한 2009년 역대 최대 추경 규모(28조4000억원)도 크게 넘어선다. 김 지사는 경제 전문가들의 추정 결과를 인용해 기본소득 지급으로 경제가 활성화하면 조세 수입으로 8조~9조원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이 현실화하더라도 기본소득은 지출 대비 수입 비중이 큰 초대형 재정적자 사업일 수밖에 없다. 이를 메우려면 일반 국민과 기업의 세금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재정을 동원한 소득주도 성장 정책으로 가구당 월평균 비소비지출(세금ㆍ연금ㆍ사회보험 등에 지출하는 돈)은 지난해 4분기 104만7000원에 달했다. 한 해 전보다 9.8% 증가하는 등 가파르게 늘었다. 돈을 받을 땐 좋지만, '공짜 점심'은 없는 격으로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누구 부담으로 마련할 것인가 

결국 '어떤 국민'이 부담할 것이냐의 문제로 남는다. 김 지사는 재원 문제 해결 방안으로 고소득층에 기본소득으로 나눠준 돈을 내년에 세금으로 환수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특정 국민에게만 '줬다 뺏는' 조세 행정이 빈부 간 불필요한 갈등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고소득층은 소수에 불과해 이들에게 쥐어준 돈을 되돌려받는다고 해도 재원 감당은 어렵다. 결국 상당수 중산층·서민의 세율도 일정 부분 오를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 실험을 한 핀란드 사회보장국의 페르티 혼카넨 선임 연구원은 과거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핀란드에서도 세금 증가를 전제로 한 기본소득에는 반대 의견이 훨씬 높다"고 전했다.

현금이 있어도 선뜻 소비에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현금 지급이 소비로 얼마나 연결될지도 불확실하다. 한계소비성향(추가 소득 중 소비하는 금액 비율)이 높은 저소득층에 지원을 몰아주는 것이 유리하다는 반론이 나오는 이유다.

"검증 안 된 제도, 부작용 키울 수도" 

전문가들은 나랏돈 투입 규모는 크지만, 효과는 검증 안 된 제도를 선뜻 도입하는 것은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경제주체의 선택권을 존중한다는 측면에서 기본소득의 취지엔 공감한다"면서도 "아직은 학계의 깊이 있는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제도화하는 데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도 선을 그었다. 윤재관 청와대 부대변인은 9일 서면 브리핑에서 재난기본소득 도입 여부에 대해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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