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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발전하는데 장기 불황 지속…실업 해결 대안으로 기본소득 '급부상'

중앙일보

입력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L자형 불황이 지속되면서 기본소득 논의가 수면 위로 올랐다. 기존의 복지 제도로는 실업률 상승과 소득 양극화 문제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생애주기별 기본소득' 공약…"엄밀한 의미 기본소득은 아냐" #보수·진보 막론하고 기본소득 주장…'부자 증세' vs '기존 복지 수정' 이견 보여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소득 상위 10%는 1997년 당시 전체 소득의 37%를 차지했지만,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2015년에는 48.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최고치다. 이 때문에 한국의 진보진영은 물론 보수진영에서도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오기 시작했다.

기본소득은 복지 혜택에 따른 대가나 의무를 지우지 않는다. 의무교육처럼 부유층·빈곤층 상관없이 똑같이 지급되는 게 기본소득이다. 다만 정치적 지향에 따라 기본소득이 목표로 하는 바는 차이가 있다. 보수진영은 복지 수혜 대상을 선별하는 관료 조직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는 '큰 정부'의 비효율성을 줄이고 실업난 해결·내수 소비 증진을 통한 시장 활성화를 위해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한다.

반면 진보진영은 기본소득을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한 인간의 보편적 권리이자, 빈곤층·무능력자란 '낙인 효과' 없이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보고 있다. 또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근로자들은 해고 불안 없이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행동에 나설 수 있고 여성들도 가부장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독립성을 높일 수 있다고 여긴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기본소득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출산지원금·아동수당·청년 구직 수당·기초연금·장애인 연금 등을 합친 '생애 맞춤형 기본소득'이 문 대통령의 공약이다.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한 시기마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의미에서 기본소득이란 용어를 선택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공약은 그 동안 보수·진보진영이 얘기해 온 기본소득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도 있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는 "생애 맞춤형 기본소득은 대부분 소득 심사를 하게 돼 있고 한시적으로 지급하며, 청년들에게 구직 노력을 해야 하는 의무를 지우는 측면에서 기본소득이라 부르긴 곤란하다"고 평가했다.

기본소득 공약은 새 정부의 추진 과제로서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과 함께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정부가 노동시장에서 책정된 가격에 개입하는 최저임금 인상은 저소득층·비정규직의 저임금 문제를 자영업자·중소기업 등 시장에 떠넘기는 구조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실질 임금 인상 효과를 낼 수 있으면서도 시장에는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기본소득 수혜 대상과 재원을 놓고 보수와 진보 진영간의 극명한 의견 대립이 예상된다. 진보진영에선 전 국민에게 최소 연 30만원~최대 연 230만원의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 법인세·고소득층의 소득세를 인상하고 국토보유세 등을 도입해 재원을 확보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보수진영에선 기초생활 보장제도 중 생계·주거·자활 급여와 국세청의 근로·자녀장려금을 폐지하면 특별한 세수 인상 없이도 기본소득 정책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편다.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중앙정부의 보건·복지·노동 예산은 123조원으로 저소득 국민 1000만 명에게 나눠준다면 4인 가구당 4900만원씩 지원할 수 있다"며 "기존 복지 제도 수정으로 저소득 가구의 근로 유인이 높아지면서도 처분 가능 소득이 늘어나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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