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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도 미친 코로나 여파…고려인 학교 문 닫을 위기 놓였다

중앙일보

입력

러시아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학교 전경. [사진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학교]

러시아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학교 전경. [사진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학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러시아에 있는 고려인 학교에도 그 여파가 미치고 있다. 코로나19로 러시아 우수리스크를 찾는 역사 탐방·관광객 등이 줄면서 학교 운영비 마련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최재형 기념사업회(기념사업회)에 따르면 고려인 민족문화자치위원회에서 활동해 온 김 발레리아(59)씨는 지난해 초 기념사업회와 함께 러시아 우수리스크에 고려인 민족학교 건립을 추진했다. 그는 어릴 적에는 한국어를 못했지만 1990년 연해주로 이주해 온 이후 혼자 한국어를 배워왔다고 한다. 우수리스크에 전문적인 한국어·문화 교육기관이 없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여긴 그는 지난해 5월 우수리스크의 한 건물을 계약했다. 고려인을 위한 한국어· 문화 교육 기관을 설립하기 위해서였다.
고려인이 약 1만6000명이 거주하고 있는 우수리스크에는 한국 교육원이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와 달리 한국어·문화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없었다.

기념사업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있던 인천시교육청 등이 지원 의사를 밝히면서 고려인 민족학교 건립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인천시교육청은 운영비 3000만원을 지원한 데 이어 동아시아 청소년 역사기행 등 탐방 행사를 열었다. 전북도는 학교 실내인테리어를 지원했고 경기도는 도서를 제공했다. 5개의 교실과 공연홀· 무대의상실· 게스트 하우스 등으로 채워진 학교는 지난해 9월 20일 문을 열었다. 최근까지 고려인 약 150여명이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코로나 19 확산으로 학교 재정에 타격

러시아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학교에서 한글과 한국문화를 배우는 고려인. [사진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학교]

러시아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학교에서 한글과 한국문화를 배우는 고려인. [사진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학교]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학교는 건립 초기부터 재정이 넉넉지 않았다. 교실 내 책상·의자 등을 직접 만드는 등의 노력으로 학교를 운영해왔다. 한국 지자체의 역사탐방, 아리랑 무용단 공연 등으로 부족한 학교 재정을 채웠다. 그러나 지난달부터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제동이 걸렸다.

지난 8일 기준 러시아 모스크바·이르쿠츠크 공항에서는 한국발 항공기에 탑승한 내·외국민을 상대로 코로나19 증상 진단검사를 하고 있다. 이들은 14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연해주도 한국 등 코로나19 감염지역으로 등록된 국가에서 온 선박 선원들이 대해 하선을 금지한다.

지난해 8월 12일 고려인 민족학교의 아리랑무용단. 아리랑 무용단은 고려인 민족학교 학생과 교사 등으로 이뤄져있다. [사진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학교]

지난해 8월 12일 고려인 민족학교의 아리랑무용단. 아리랑 무용단은 고려인 민족학교 학생과 교사 등으로 이뤄져있다. [사진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학교]

이렇다 보니 고려인 민족 학교를 찾는 이들도 줄고 있다. 역사 탐방이 보류됐고 학교 측이 방한해 공연하는 일도 제한됐다. 학교 운영에도 비상이 걸렸다.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김 발레리아씨는 지난해 5월 고려인 민족 학교를 건립하면서 올해 5월까지 건물주 측에 잔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로 재정에 타격이 오면서 학교 측은 잔금 완납뿐만 아니라 학교 교사에게 지급할 월급도 빠듯한 상황에 놓였다고 한다.

“최재형 순국 100주년에 민족학교 문 닫을 위기”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학교에서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고려인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고 있다. [사진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학교]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학교에서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고려인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고 있다. [사진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학교]

문영숙 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최재형 선생은 한인 동포를 위해 32개의 학교를 세웠는데 선생 순국 100주년에 선생의 정신을 기려 세운 민족학교가 문 닫을 위기 놓였다” 안타까워했다. 학교 측과 기념사업회는 재정 확보를 위한 모금 요청 등을 검토하고 있다.

올해로 순국 100주년을 맞은 최재형 선생은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일대서 활동한 독립 운동가다. 그는 무장 독립투쟁을 지원하는 동시에 연해주 내 한인 마을마다 소학교를 세우는 등 교육에 앞장섰다. 최재형 선생은 일제가 고려인을 무차별 학살한 1920년 4월 순국했고 유가족들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사후 42년만인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3급)을 추서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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