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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사랑 통해 인생을 되돌아 보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부드러운 파스텔 색조의 무대 위에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아름다운 춤이 있다. 시적인 환상이 있고 재치 있는 웃음이 있다. 또 지루한 생활의 권태가 있는가 하면 청순한 사랑도 있다.
이처럼『도적들의 무도회』는 연극의 여러 가지 재미를 동시에 맛보게 하는 무대였다.
작가자신이『코미디 발레』라고 이름한 이 연극에서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다양하게 탈바꿈을 하며 춤을 추듯 돌아간다. 도둑은 귀족으로 탈바꿈하고 은행가는 도둑으로 변장한다. 콧수염도 여러 번 바뀌고 옷도 무수히 바뀐다. 신분까지도 바뀌는 놀이가 빠른 속도로 펼쳐진다. 자의 건 타의 건 모든 인물이 이 놀이 속에서 각기 한 역을 맡아 즐겁게 연기를 한다.
이들은 연극 안에서 또 하나의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놀이를 이끄는 늙은 레이디하프는 권태로운 생활에 지쳐서「엉뚱한 짓」을 하고 싶은 것이다. 도둑을 귀족으로 믿는 척하며 이 놀이를 유발하고 자기자신도 놀이 속에 끼어 들어 한 때를 즐기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유쾌한 웃음 뒤에는 간간이 무의미한 인생을 씹는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여기서 작가 아누이유 특유의 연극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때묻은 인생의 권태가 있고 한낱 놀이에 지나지 않는 텅 빈 인생이 펼쳐지는 이 곳에 대조적으로 젊은이의 청순한 사랑이 피어난다, 아누이유의 작품마다 나타나는 가식과 진실, 저속과 순수의 대립이 여기에서도 엿보여 웃으면서도 인생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된다. 그러나 이 연극은 어디까지나 밝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놀이의 즐거움을 한껏 맛보게 하는 코미디로 남는다.
프랑스 연출가가 직접 연출하였다는 이 연극에서 서구식의 코믹을 많이 대할 수 있는 느낌을 받았다. 인형극 같은 인물들의 동작, 또 은행가부자처럼 쌍쌍을 이루는 인물들의 기계적인 동작 등은 전통적인 서구식 코미디의 수법을 엿보게 했다. 특히 무용하듯 리드미컬한 동작들은 연극 전체에 흐르는 멜로디와 조화를 이루어 보는 이를 즐겁게 해주었다.
무대장치도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냈으나 특히 의상의 연극적 효과가 돋보이는 무대였다. 반장이 많은 연극에서 인물과 분위기에 맞는 의상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여기서는 특색 있는 의상들이 인물의 역할에 매우 적합하게 구상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언제나 무대에서 대하는 박정자씨의 시원한 연기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특히 많은 웃음을 선사한 박인환씨에게 박수를 보내며 노련한 연기자들 사이에서 참신한 연기를 보여준 젊은 한 쌍 뉴스타브와 줄리엣 역의 최수종·박순애는 연극 내용에서처럼 우리에게 신선한 감각을 안겨주었다. 남궁연<성심여대 불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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