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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뤄진 개학에 개원·휴원 요구 엇갈린 학원…복도 불 끄고 ‘꼼수 개원’도

중앙일보

입력

서울 강남구 대치동 영어학원 강사 A(30)씨는 최근 자신의 강의를 직접 촬영하기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학원은 잠시 문을 닫았지만, “학습 공백이 없게 해달라”는 학부모 요청이 많아 ‘인강(인터넷강의)’을 배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A씨는 “영상 편집도 하고, 교재는 직접 가정을 방문해 배부해야 해 업무량이 두 배로 늘었는데 학부모들은 ‘인강인데 학원비를 좀 깎아달라’고 한다”며 “이 상태가 지속가능할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여파가 학원가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4일부터 문을 닫아 오는 28일까지, 35일 동안 휴원하기로 결정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이맥스 어학원 강의실이 텅 비어있다. 뉴스1

코로나19 여파가 학원가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4일부터 문을 닫아 오는 28일까지, 35일 동안 휴원하기로 결정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이맥스 어학원 강의실이 텅 비어있다. 뉴스1

2일 교육부가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의 개학을 23일로 연기하면서 학원가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학교와 달리, 민간 시설인 학원에 대해선 정부가 강제로 휴업 조치를 지시할 수 없다. 교육부는 2일 사설 학원에 대해선 휴원 권고를 다시 한 번 적극 실시하고 현장점검을 강화하겠다는 방침만 재확인했다. 학원들은 자율적으로 개원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름방학 매출까지 타격”

신학기를 앞두고 ‘대목’을 노렸던 학원가는 비상이 걸렸다. A씨는 “대치동 일대는 일단 다 휴원했다. 큰 학원이 많아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 큰일”이라고 전했다. 경남 김해에서 종합학원을 운영 중인 원장 B(55‧여)씨도 “경남에서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김해시 학원들도 대부분 휴원했다. 수업을 안 한 날짜만큼 다 환불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초‧중‧고 개학이 3주나 미뤄지면서, 학원가에 코로나19 여파가 여름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B씨는 “학교 휴업일이 늘어나면 방학 일수도 줄어들 텐데, 여름방학 매출까지 타격이 클 것”이라고 봤다.

아직 대다수 학부모들은 “절대 학원에 안 보낼 것”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최근 부산에서 한 고등학생(70번 확진자)이 학원강사(54번 확진자) 수업을 듣고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은 사례가 생기면서 불안감이 커진 상태다. 경기 용인시에 거주하는 이모(42‧여)씨는 “같은 동네 학원 원장이 확진자라는 소식을 듣고 초등학생 3학년 자녀가 다니는 학원 6곳에서 석달 치 학원비를 환불받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개학하더라도 학교도 보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 학원 3분의 1은 문 열어

3일 서울 서초구 이수중학교 정문에 '휴업 명령' 안내문이 써붙어 있다. 연합뉴스

3일 서울 서초구 이수중학교 정문에 '휴업 명령' 안내문이 써붙어 있다. 연합뉴스

반면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선 ‘학원까지 닫으면 돌봄‧학습공백이 크다’는 불만도 나온다. 서울에서 초등학교 6학년 자녀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 박모(40‧여)씨는 “인강으로 바뀌니 아이 집중도가 현저히 떨어지는데, 수업 가격은 똑같다”며 “마스크를 쓰고 수업하면 괜찮지 않겠느냐”고 했다. 지자체 현장점검을 피해 ‘꼼수 개원’을 하는 사례도 생겼다. 박씨는 “아이를 학원에 보냈더니 ‘복도에 불이 꺼져있다’며 돌아왔는데, 다시 가보니 창문이 있는 복도 불만 끄고 강의실에서 조용히 수업을 진행하고 있더라”고 했다.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누가 먼저 문을 여느냐’의 싸움일 뿐”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 달 28일 기준 서울시 내 학원 2만5261곳 중 1만6211곳만 휴원을 결정했다. 9050(약 35.8%)곳은 휴원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일부 맘카페에는 “학원은 내일부터 문 연다고 연락이 왔는데, 그냥 안 보낼 것”이라는 게시물도 다수 올라오고 있다., ‘울며 겨자먹기’로 학원비만 지출하는 사례도 생겼다. 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김모(38‧여)씨는 9살 자녀가 다니는 영어 어학원이 4일부터 수업을 시작하지만 보내지 않을 생각이다. 김씨는 “레벨테스트를 거쳐 반 편성까지 끝낸 상태라, 지금 시기를 못 맞추면 아예 가을학기나 돼야 학원에 다시 다닐 수 있다고 한다”며 “코로나는 걱정되는데, 개강 시기를 못 맞출까봐 그냥 돈 내고 안 보낼 판”이라고 토로했다.

학원 휴원 여부를 두고 일부 온라인 맘카페에서는 "고민된다"는 게시물이 다수 올라왔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학원 휴원 여부를 두고 일부 온라인 맘카페에서는 "고민된다"는 게시물이 다수 올라왔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이 같은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교육부는 “민간학원에 대해선 정부가 일일이 통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3일 통화에서 “정부는 휴원을 권고했고, 구체적인 관리 주체는 일선 시‧도 교육청이라 우리가 강제로 휴원 조치를 취할 수는 없다”며 “시‧도 차원에서 요청하면 현장점검을 통해 개원을 결정한 학원이 위생‧방역조치를 철저히 취하고 있는지 확인할 것”이라고 전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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