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당한 재일동포 직원 일본 기업이 소송비 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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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일본 굴지의 주택업체가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차별적인 말을 들은 영업사원의 명예회복을 위해 소송을 전면 지원키로 했다.

오사카(大阪)의 주택업체 세키스이(積水)하우스의 사원인 재일교포 2세 서문평(45)씨는 자신에게 민족차별적 발언을 한 고객(58)을 상대로 위자료 300만 엔을 요구하는 소송을 31일 냈다. 변호사 비용 50만 엔을 비롯한 소송 관련 비용 일체는 회사 측이 부담하기로 했다. 아무리 고객이라 하더라도 종업원의 인권을 유린한 행위는 회사 차원에서 용서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서씨의 변호인 쓰다 나오히로(津田尙廣)는 "근무 중에 들은 민족차별적 발언을 둘러싸고 소송을 제기하고, 이를 기업이 지원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세키스이하우스가 지은 맨션의 애프터서비스를 담당하는 서씨는 지난해 2월 배수구 수리를 의뢰했던 오사카의 한 맨션 소유자의 집을 동료 일본인 직원과 함께 방문했다. 한국 이름이 적힌 자신의 명함을 전하며 수리 내용을 설명하자 고객은 "너 조총련의 스파이 맞지. 북한에 돈 얼마나 보내느냐. 너 같은 놈 때문에 납치 문제가 일어나는 거야"라고 다그쳤다. 이어 "세키스이하우스란 사명과 이 한글 이름을 같이 적다니 (나에게) 싸움을 거는 거냐. 이건 도전장이야" 등의 폭언을 했다.

이에 서씨는 "내 국적은 한국이다. 왜 한글 이름이 안 된다는 소리냐"고 항의했으나 고객은 2시간에 걸쳐 "(한글 이름은) 명함에 작게 써" "북한과 일본이 전쟁 나면 넌 적이잖아. 세키스이가 누굴 고용하든 자유지만 왜 (한국 국적의 사람을) 고객 앞에 내보내는 거야" 등의 차별 발언을 계속했다.

서씨와 동료는 곧바로 회사 측에 이런 사실을 보고했고, 회사 측은 사실관계 확인과 사후 조치를 위해 전화와 편지로 고객에게 여러 차례 연락했으나 결국 사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이에 서씨는 법무성 인권상담소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이 기관이 문제의 고객에게 어떤 대응 조치를 했는지 구체적 내용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이에 서씨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얻어 1년6개월 만에 소송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회사 측은 소송 비용을 부담할 뿐 아니라 앞으로 서씨와 동료가 재판 출석을 위해 자리를 비워도 근무로 인정하기로 하는 등 서씨를 전면 지원키로 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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