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규정'만 집착하다가···병상 못 구한 4명 숨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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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대구 남구 신천지 교회 인근 도로에서 육군 제독 차량이 방역작전을 펼치고 있다. [뉴시스]

1일 대구 남구 신천지 교회 인근 도로에서 육군 제독 차량이 방역작전을 펼치고 있다. [뉴시스]

대구시 상황이 날로 악화하고 있다. 1일 오전 9시 기준으로 코로나19 확진자 중 병실이 없어 집에 있는 사람(이하 자택 확진자)이 1661명이다. 입원한 사람은 908명에 그친다. 확진자 3명 중 2명이 자가격리 중이다. 대구의 자택 확진자는 지난달 23일 140명에서 계속 증가해 일주일 만에 약 12배로 늘었다. 140명일 때 “이른 시일 내에 병원으로 이송할 계획”이라고 했지만 빈말이 된 지 오래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1일에야 대구의 자택 확진자를 연수원으로 이송하겠다고 밝혔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무증상 또는 경증 환자들을 위한 생활치료센터를 확충해 필요한 지자체에 지원하겠다. 당장 내일(2일) 대구 소재 교육부 중앙교육연수원을 생활치료센터로 운영하고 경북대병원에서 의료 관리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전국 각지의 국공립 및 민간시설을 생활치료센터로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대구시, 정부에 병상 추가지정 요청 #음압병실 있는 병원만 입원 가능 #메르스 때 규정에 얽매여 늦어져 #“의료자원 부족 땐 효율성 따져야”

하지만 이 같은 방침이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시 측은 병상 부족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중앙 정부에 수차례 요청했다. 자택 확진자가 300명을 넘어선 지난달 26일,1304명으로 증가한 29일 특단의 대책 마련을 읍소했다.

코로나19 주치의로 구성된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도 지난달 26일 “대구·경북처럼 확산 규모에 따라 의료자원이 부족한 경우 중증도에 따른 의료자원의 효율적 이용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증세가 가벼운 환자는 자가격리 치료로 전환하는 한편 폐렴이 있는 중증 환자(전체의 13.8%)는 2~3차 의료기관, 심각한 환자(4.7%)는 인공호흡기 등 중환자 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으로 보내자는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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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정부는 영남지방의 공공병원·군병원 등의 병상을 마련 중이라는 기계적인 답변만 반복했다. 심지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입원에 몇 시간 걸리는데 그걸 자택에 방치된 것처럼 대구시가 포장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1일 “전날(2월 29일) 하루 동안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을 비롯해 대구보훈병원, 상주적십자병원 등에 165명을 입원시켰지만 여전히 집에서 입원을 기다리는 환자가 많다. 병상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정부가 ‘감염병 환자는 입원 치료한다’는 규정·지침에 얽매여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행 감염병예방법은 감염병 위기 시 기존 감영병 관리기관이 아닌 의료기관을 감염병 관리기관으로 정하거나 격리소·요양소·진료소를 설치·운영할 수 있다. 그런데 관련 시행령·규칙 등은 음압시설을 갖춘 1인 병실을 설치한 곳으로 감염병 관리기관을 한정하고 있다. 경증·중증 등에 대한 세부 기준 없이 일괄 적용되는 규정이라 신속하게 환자를 수용할 의료기관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

이 규정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처럼 환자가 186명에 불과할 때는 통한다. 하지만 코로나19처럼 환자가 폭발할 때는 맞지 않는다. 그런데도 법령에 교조적으로 얽매였고, 자택 확진자나 자가격리자가 3명 숨진 뒤에야 법령을 풀었다. 이후에도 한 명 더 사망해 집에서 입원을 기다리다 숨진 환자는 4명으로 늘었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메르스 때 쓰던 기준, 규정 하나 못 바꿔서 시스템이 마비되면 되겠냐”고 질타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의 경우 경증 환자들은 스스로 수발이 가능한 만큼 의료자원의 부족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 효율성을 따져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구=백경서 기자, 백희연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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