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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야반도주하듯 한국 떴다, KDI대학원 유학생들은 지금

중앙일보

입력

25일 외국인 유학생들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동하고 있다. 본 사건과 직접 연관은 없음. [연합뉴스]

25일 외국인 유학생들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동하고 있다. 본 사건과 직접 연관은 없음. [연합뉴스]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빠르게 확산하는 와중에 국책연구기관 대학원의 한 외국인 유학생이 돌연 자퇴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변 유학생들이 동요하고 있어 추가로 자퇴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26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KDI대학원) 등에 따르면 올해 KDI대학원 공공관리학과에 입학한 방글라데시 출신 20대 남성 A는 지난 23일 학교에 예고도 하지 않고 방글라데시로 떠났다. 현재 자퇴 절차를 밟고 있다.

유학생들 "코로나 때문에 불안해했다"

KDI대학원은 KDI 부설 특수전문대학원으로 재학생 200여 명 중 외국인(개발도상국 출신) 유학생 비율이 절반가량에 달한다. 현재까지 135개국 약 2100명의 국제 졸업생을 배출했다. 외국인 유학생은 전부 한국 정부의 초청을 받고 오는 장학생으로 학비와 생활비, 주거 등을 제공받는다. 유학 후 자국으로 돌아가 한국의 발전 경험을 전파하는 지한파 엘리트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A는 급히 한국을 떠나기 직전 다른 유학생들에게 “신종코로나 때문에 불안하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학생 B는 중앙일보에 “A가 신종코로나로 방글라데시 공항이 폐쇄될까 불안해했다(After he heard about the coronavirus spread in Korea, he scared that airports will be closed)”며 “곧장 비행기 표를 예약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So he booked a ticket and went back home)”고 밝혔다.

26일 인하대 관계자들이 외국인 유학생의 숙소 주변을 방역하고 있다. 본 사건과 직접 관련은 없음. [뉴스1]

26일 인하대 관계자들이 외국인 유학생의 숙소 주변을 방역하고 있다. 본 사건과 직접 관련은 없음. [뉴스1]

A가 한국을 뜬 지난주는 국내 신종코로나 확산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 시기다. 17일부터 18일까지 30명 수준을 유지하던 총확진자 수가 20일 104명, 21일 204명, 22일 433명, 23일 602명으로 급증했다. 26일 9시 현재는 1100명을 돌파한 상태다. 반면 방글라데시는 지금까지 신종코로나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A 외에도 KDI대학원에는 자퇴하고 귀국할 것을 고려하는 외국인 유학생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일부는 학교와 자국 대사관 등으로부터 심리 상담을 받기도 했다.

대학원, 1주일간 수업 취소

유학생을 중심으로 동요 움직임이 일자 KDI대학원은 25일 오후 재학생들에게 “교내에 불안감이 높아져 26일부터 3월 3일까지 1주일 동안 수업을 취소한다”고 공지했다. 당초 KDI대학원은 “4주 이내에서 개강을 연기하라”는 교육부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달 10일 개강해 수업을 이어왔다. 학교는 휴강 이후 상황에 따라 오프라인 강의 대신 온라인 강의를 진행할 수 있다.

A 자퇴에 대해 KDI대학원은 “낯선 언어와 환경에서 오는 심리적 불안으로 자퇴를 결정하는 외국인 유학생이 매년 2명가량씩 발생한다”며 “A가 자퇴 결정을 하는 데는 신종코로나보다는 낯선 언어와 환경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대학 관계자는 “추가로 발생할 수 있는 외국인 학생들의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25일 한양대에 중국인 유학생의 임시 격리시설로 사용할 캠핑카가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25일 한양대에 중국인 유학생의 임시 격리시설로 사용할 캠핑카가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중국인 유학생 “한국이 더 위험”

국내 신종코로나 확진자 급증으로 외국인 유학생 전반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심지어 발병 근원지 국가인 중국 출신 유학생들이 입국을 꺼리거나 휴학하고 고향으로 귀국하는 현상도 잇따른다. 한국으로 입국했다 바로 중국으로 돌아간 한 유학생은 “이제는 중국보다 한국이 더 위험해 보인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외국인 유학생은 자기 나라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여기에 더해 최근 ‘한국은 상대적으로 신종코로나로부터 안전한 나라’라는 인식이 뒤집히면서 불안감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곽 교수는 “국내 재학생과 동등한 수준으로 방역이나 의료 지원 등의 실질적인 조치를 해주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건·김민중 기자 park.k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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