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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깔대기식 방역망의 한계, 깜깜이 경로 확산 못 막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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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4호 04면

[코로나19 비상] 구멍 뚫린 초동 대응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지난달 20일 최초 발생한 이후 정부는 대응지침을 4번 바꿨다. 최초 발생지인 중국 우한지역을 벗어난 곳에서 감염이 발생하거나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사례가 계속 나타났기 때문이다. 초기 방역 단계에서 의사환자(의심환자)를 너무 협소하게 정의한 탓에 방역망에 구멍이 생긴 측면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집단 지역감염 현상이 초기에는 발생하지 않았던 점, 상대 국가인 중국과의 외교 관계 문제, 현장 인력 부족 등을 감안하면 이른바 ‘역깔대기’식 대응이 불가피한 점도 있었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눈에 띄는’ 확진자 발생 때마다 #중대본, 대응지침 네차례 수정 #중국 방문자 입국 제한 등 조치 #외교 문제, 인력 부족으로 한계 #“증상 의심 해외 여행자 모두 조사” #의료계선 계속 선제 대응 주문

지금까지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는 감염경로가 ‘눈에 띄는’ 확진자가 발생할 때마다 대응지침을 수정해왔다. 가장 최근(19일)에 나온 코로나19 대응지침(제6판)은 ‘조사대상 유증상자 1, 2’에 대한 사례 정의를 새로 만들었다. 코로나19 발생 지역을 방문하거나 해외 여행력이 없더라도 검사를 하도록 했다. 사례 정의란 감염병 감시와 대응 관리가 필요한 대상을 말한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204명으로 늘어나고 2명이 사망한 가운데 21일 확진자 이동 경로에 포함된 서울 동대문 인근 지하철역에서 구청 관계자들이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204명으로 늘어나고 2명이 사망한 가운데 21일 확진자 이동 경로에 포함된 서울 동대문 인근 지하철역에서 구청 관계자들이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서울 종로구에서 발생한 29번째 확진자(16일)와 대구 집단감염의 시작으로 지목된 31번째 확진자(18일)의 감염 경로가 불명확해지자 보건당국이 방역망을 넓혔다. 이는 새 지침(6판)에 따른 것이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기존에도 의사 재량에 따라 검사가 가능했지만, 정부에서 더 명확한 지침을 내려 지역사회 감염에 적극적으로 대비한다는 취지”라고 했다. 앞서 중대본은 중국·태국·싱가포르 여행력이 있는 확진자가 다수 나타나자 지난 6일 대응지침(5판)을 발표하며 ‘중국’ 여행력이 있거나 의사 소견에 따라 역학 연관성이 의심될 경우 코로나19 검사를 가능하도록 했다. ‘후베이성’ 여행력에서 중국 전체로 검사 대상자를 확대한 것이다. 이에 맞춰 선별진료소와 민간의료기관 확대 등 지자체, 의료기관 대응 조치도 한 단계 격상했다.

일부 의료계는 지역사회 감염을 우려해 일찌감치 적극적인 대응 조치를 요구해왔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28일 “해외 여행력 발열과 호흡기 증상이 있다면 후베이성 방문자와 동일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중국에 다녀와도 감염증 검사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시기는 정부가 당시 대응지침(4판)에 따라 의사환자를 ‘후베이성’ 여행력자에 한해 대응하고 있던 때다. 이에 대해 김윤 서울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메르스 때 첫 번째 환자는 바레인에서 왔는데 (발생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니라고 검사를 하지 않아 구멍이 뚫린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우한폐렴 예방 및 확산방지를 위한 토론회’에서는 지역사회 전파를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이날 참석한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확진자를 접촉한 사람만 검사 대상이었고, 지역사회 감염을 염두에 둔 검사는 진행하지 않았다”며 “지금이라도 선제 대응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선제 대응 방식에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2015년 메르스 당시 병원 내 집단감염이 발생한 점과 달리 코로나19는 29번째 확진자가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해외 여행력이 있거나 확진자 접촉을 통해 ‘살라미’식 확진자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적극적인 방역 차원에서 확진자가 다녀간 경로에 따라 병원, 식당, 백화점 등의 전면 폐쇄 조치하자 매출 하락이 우려되면서 오히려 ‘과잉 대응’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중국 방문자에 대해 국내 입국 제한 조치를 해야한다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75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하지만 이 청원은 실현되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중국 여행자에 대한 입국 제한 의견을 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관련 조처를 했다가 자칫 외교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었다.

초기부터 강력한 대응지침을 내리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로 전문인력 부족 문제도 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감염경로를 최일선에서 조사하고 방역 조치를 하는 역학조사관이 부족하다는 문제 제기가있었지만 예산 확보 등의 문제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나마 중앙 소속 역학조사관은 일부 충원됐지만 각 지자체 소속 역학조사관은 충원되지 않았다. 인천은 최근까지 1명의 역학조사관도 없다가 이번 사태 후 충원했고, 울산 역시 얼마 전에야 1명에서 2명으로 늘렸다.

전염병에 대한 방역 대응 지침은 나라마다 제각각 일 수밖에 없다. 최초 발생국과의 지리적 위치, 전문 인력과 시설의 차이 등 여러 이유 때문이다. 의사환자에 대한 가장 강력한 조치를 초기부터 취한 나라 중 하나는 미국이다. 미국은 지난달 31일 코로나19 전파와 관련해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시민권자, 영주권자, 외국인 중 최근 2주 내 중국을 방문한 이력이 있으면 자국의 입국을 금지했다. 반면 자국 내에서는 불필요한 공포가 확산되지 않도록 했다. 한국 등 상당 국가가 마스크 착용을 강력히 권고하는 것과 달리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마스크 착용을 필수 지침으로 권고하지 않고 있다. 또 확진자가 다녀갔다고 해서 해당 시설을 전면 폐쇄하는 경우도 최소화하는 편이다.

김나윤 기자, 김여진 인턴기자 kim.n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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