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혈액 냉장고' 비어간다···결국 헌혈버스 누운 공무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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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대한적십자사 경기혈액원 혈액 보관 냉장고. 채혜선 기자

14일 오전 대한적십자사 경기혈액원 혈액 보관 냉장고. 채혜선 기자

지난 14일 오전 대한적십자사 경기혈액원. 혈액 보관 냉장고에는 혈액 주머니가 듬성듬성 있었다. 경기혈액원 관계자는 “평소엔 냉장고가 혈액 주머니로 가득 차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각층의 냉장고 칸을 살펴봐도 혈액 주머니가 꽉 찬 곳은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혈액 수급이 어려워진 탓이다.

설 연휴와 겨울방학에 따른 혈액보유량 감소 시기에 신종코로나 유입으로 단체헌혈 취소, 외출 기피 등이 잇따르면서 국내 혈액보유량에 빨간불이 켜졌다.

신종코로나 여파에 헌혈 급감

14일 대한적십자사 경기혈액원 인근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혈액이 부족하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채혜선 기자

14일 대한적십자사 경기혈액원 인근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혈액이 부족하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채혜선 기자

17일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신종코로나 국내 확진자 첫 발생 다음 날인 지난달 21일부터 지난 16일까지 전국에서 총 273개 단체가 헌혈 계획을 취소했다. 헌혈예정인원(헌혈이 무산된 인원)은 1만3900여명이다. 개인 헌혈자는 17만447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9만6177명보다 2만1000여명 이상 줄었다.

보통 적혈구의 적정 혈액보유량은 평균 5일분 이상이다. 그러나 이날 오후 1시 기준 혈액보유량은 4.5일분(경기혈액원 3.2일분)으로 집계됐다. 혈액보유량이 3일분을 밑돌면 공급 위기로 본다. 모든 혈액형에서 적정보유량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대한적십자사 측은 전했다.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리면서 환자가 직접 헌혈자를 데리고 오는 ‘지정 헌혈’도 증가했다. 이날 오후 경기혈액원 혈액의 집 문을 나설 땐 대기석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경기혈액원 관계자는 “병원에서 피가 없으니 환자 가족에게 지정헌혈자를 구해오라고 하고 있다”며 “밖에서 볼 땐 북적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지정 헌혈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같은 말은 수치로 증명된다. 이날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 10~16일 한 주 동안 지정 헌혈은 2894건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2월 전체 건수였던 2629건을 뛰어넘은 수치다.

14일 오전 대한적십자사 경기혈액원에 들어가는 입구. 손 세정제를 바르고 입장해야 한다. 회장 명의 호소문이 붙어 있다. 채혜선 기자

14일 오전 대한적십자사 경기혈액원에 들어가는 입구. 손 세정제를 바르고 입장해야 한다. 회장 명의 호소문이 붙어 있다. 채혜선 기자

앞서 지난 4일 대한적십자사는 회장 명의로 “신종코로나로 헌혈자가 급격히 감소해 혈액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헌혈 참여를 호소한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했다. 각 지역 혈액원은 기존 1매만 주던 영화 상품권을 2매로 주는 등 이벤트를 마련하며 헌혈을 독려하기도 했다.

“혈액 대란 극복하자” 단체 헌혈 나선 공무원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혈액 수급난 해소를 위해 서울시 공무원들이 17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대한적십자사 헌혈 버스에서 헌혈하고 있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혈액 수급난 해소를 위해 서울시 공무원들이 17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대한적십자사 헌혈 버스에서 헌혈하고 있다. [뉴스1]

사태 해결을 위해 공무원들도 소매를 걷어 올렸다.

서울시는 이날 서울광장을 찾은 대한적십자사 헌혈 버스에서 시 공무원들이 헌혈에 나서는 한편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유도할 예정이다. 청와대도 이날부터 이틀간 청와대 연무관에서 단체 헌혈행사를 진행한다. 지난 13일엔 염태영 수원시장 등 수원시청 공무원 110명이 수원시청을 찾은 헌혈 버스에서 헌혈에 참여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인천·전북·속초·부산·광주광역시 등 전국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2일 인천 해양경찰청에서 단체 헌혈에 동참한 한 해경 관계자는 “헌혈 시 체온측정과 마스크 착용 등 예방조치를 철저히 해 헌혈과정에서 감염될 위험이 없으니 안심하고 헌혈에 참여해달라”고 말했다.

다만 현장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혈액원 관계자는 “피가 없는 것도 국가적 재난이라고 본다”며 “전국 광역자치단체·지방자치단체가 헌혈장려조례 개정을 통해 헌혈추진협의회를 구성하고 지역사회 혈액 수급 안정화에 기여하는 등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채혜선·심석용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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