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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억 손실에도 자신만만…손정의 '대머리론'은 진행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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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손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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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의 후퇴가 심각하다.”

[글로벌 피플] #비전펀드 투자실패 실적 악화에도 #88개 투자 누적수익률 12% 달해 #손 “반성은 해도 비전 안 흔들려” #스프린트·T모바일 합병 주가 호재

2013년 일본의 한 트위터 이용자가 손 마사요시(孫正義·한국명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의 대머리를 두고 농담조로 지적했다. 대머리가 심해졌다는 데 기분 좋을 리 없건만 손 회장의 비범한 대응이 화제가 됐다. 그는 “머리카락이 후퇴하는 게 아니라 내가 전진하는 것이다”라고 트윗을 올렸다. 최근 소프트뱅크그룹의 실적 악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 회장은 여전히 ‘전진’ 중이다.

“조류(潮流)가 바뀌고 있다(Tide is turning).”

지난 12일(현지시간) 도쿄에서 열린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의 지난해 3분기(10~12월) 실적 발표 현장. 실적은 어닝 쇼크 수준이었다. 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99.4%나 급감한 25억8800만 엔(279억원)에 그쳤다. 1~3분기(4~12월)까지 누적으로 130억 엔(14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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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손정의(63) 회장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직접 프레젠테이션(PT)에 나선 그의 핵심 메시지는 ‘큰 흐름이 달라졌다’였다. PT 중간에 시각에 따라 오리로도, 토끼로도, 보이는 그림을 제시했다(그림). 일부 애널리스트들이 소프트뱅크를 잘못된 관점에서 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메타포라며 이렇게 말했다. “시장은 여전히 우리에게 비관적이다. 소프트뱅크가 부도라도 날 것 같다. 하지만 조류가 바뀌고 있다.”

시장의 비관론도 이유는 있다. 이 회사 핵심 사업인 비전펀드에 대한 실망이 커진 탓이다. 비전펀드는 소프트뱅크가 2017년 281억 달러를 출자하고, 사우디아라비아 공공투자펀드(PIF)가 450억 달러를 투자하는 등 100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펀드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투자한 88개 스타트업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투자한 88개 스타트업

비전펀드가 과연 투자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지난해부터 시장은 고개를갸웃거리기 시작했다. 글로벌 차량공유업체 우버는 지난해 상장 이후 고전했고, 클라우드 메신저 플랫폼인 슬랙도 마찬가지다. 110억 달러를 투자한 사무실 공유회사 위워크는 지난해 10월 상장을 취소했고 긴급 자금 지원을 위해 비전펀드는 100억 달러를 추가로 써야 했다. 비전펀드가 6억 달러를 투자한 인도의 호텔 브랜드 오요(OYO)도 실적 악화로 인력을 줄이는 등 구조조정 중이다.

최근 실패사례가 더 추가됐다. 미국의 스타트업인 온라인 기반 생활용품 업체 ‘브랜드리스(Brandless)’가 지난 10일 폐업을 선언했다. 브랜드리스는 유통비용을 낮춰 고품질 생활용품 등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전략으로 2017년 사업을 시작해 이듬해 소프트뱅크로부터 2억40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이 같은 투자 실패로 인한 비전펀드의 영업손실이 지난해 10~12월 2251억 엔에 달했다. 9700억 엔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전분기에 이어 2분기 연속 적자다. 그나마 소프트뱅크가 지분을 보유한 중국의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그룹이 홍콩 증시에 상장하면서 3319억 엔의 지분 평가이익이 생긴 덕분에 그룹 전체로는 적자를 면했다.

소프트뱅크그룹 주가 추이

소프트뱅크그룹 주가 추이

비전펀드가 삐걱대니 2호 펀드 계획도 차질이 생겼다. 2017년 조성한 비전펀드 1호에 이어 소프트뱅크는 애초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폭스콘 등의 출자를 받아 1080억 달러(127조6560억원) 규모의 2호 펀드를 설립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손 회장도 12일 실적 발표 자리에서 자금 모집이 어렵다고 인정했다. 그는 “비전펀드 2호의 공식적인 출범 전에 조금 작은 규모의 펀드를 시작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손 회장은 왜 흐름이 달라졌다고 주장할까.

우선 비전펀드의 투자 성과가 시장이 보는 것만큼 나쁘지 않다고 했다. 우버 등 비전펀드 투자기업 중 상장사 투자액은 96억 달러인데 투자 수익은 2월11일 종가 기준으로 44억 달러(수익률 45%)였다. 현재 88개 스타트업에 투자한 비전펀드에서 상장에 성공한 기업은 8개다. 비전펀드 전체의 누적 수익은 지난해 말 현재 95억 달러(수익률 12%)였다. 박주선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부진한 실적보다 투자 성과에 주목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소프트뱅크그룹이 투자한 미국 이동통신회사 스프린트와 T모바일과의 합병을 미국 법원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승인한 것도 호재다. 260억 달러의 스프린트의 T모바일 인수가 마무리되면 소프트뱅크의 채무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스프린트 주가가 급등한 것은 물론, 스프린트 지분 85%를 보유한 소프트뱅크 주가도 덩달아 뛰었다. 죽 쑤던 우버 주가도 올해 연초대비 이달 12일까지 39% 반등했다. 덕분에 비전펀드도 3000억 엔의 평가이익을 챙겼다.

위워크 경영도 호전될 것이라고 했다. 여전히 성장성 있는 시장인 만큼 ‘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EBITDA)’ 기준으로 내년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손 회장은 “매일 반성하고 있지만 위축되지는 않는다”며 “기본적인 비전, 전략은 흔들림이 없다”고 했다.

엘리엇 공격으로 소프트뱅크 주가 탄력

엘리엇 변수도 일단 주가에는 긍정적이다.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소프트뱅크 지분 3%(25억 달러, 약 3조원)를 확보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이달 초 보도했다. 402억 달러를 굴리는 엘리엇은 비전펀드 투자 결정 과정의 투명성 제고와 200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도 요청했다. 손 회장 보유지분(22%)이 많아 엘리엇이 노리는 건 경영권 확보보다는 주주가치 상승이라는 분석이 많다. 뉴욕타임스(NYT)는 “손 회장이 비전펀드 투자과정에서 전권을 행사했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공격적 행동주의 투자자와 고집불통 경영자의 갈등 가능성을 거론했다. 보유자산을 팔아 현금화하면 저평가된 주가가 오를 것으로 보는 엘리엇과 벤처투자가 손정의의 ‘비전’이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FT는 엘리엇의 개입은 소액투자자에게 좋은 소식이지만 행동주의 펀드의 시험대이기도 하다고 13일 보도했다.

서경호 기자 prax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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