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전문대학생 폭행치사사건 일파만파|연대대학생 진술 거의 사실과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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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연세대 학생회관 내 설인종 군(20, 동양공전 공업화학2) 폭행치사사건은 자수했던 연세대생 6명이 모두 공동정범으로 18일 구속된 데다 숨진 설 군이 자수학생들의 당초 주장과는 달리 기관의 학원프락치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커져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자수하기 전 연세대생 6명은 총학생회 앞으로 작성한 자술서에서▲설 군이 미대·신학대학 등 소속을 횡설수설하고▲고교동창생인 박재신 군을 통해 안기부직원인「심현순」을 소개받아 심의 지시로 학생회 간부동향을 보고하는 등 프락치 활동을 해왔다고 설 군이 자백했으며▲실종된 학생회 홍보부장 고진숙 양(22·천문기상4)이 안기부 연희동 분실인 한방병원지하실에 감금되어있는 것을 보았다고 설 군이 진술했기 때문에 프락치로 생각, 흥분해서 때렸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설 군의 프락치여부를 수사한 경찰은 자수학생들의 이 같은 주장이 사실과 크게달라 설 군이 프락치가 아닌 것으로 보고있다.
즉 18일 경찰에 출두한 고교동창생 박 군은『최근 6개월 동안 숨진 설 군을 만난 적이 없고「심현순」이란 사람은 전혀 모른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박 군은 또 설 군이 육체적 고통을 이기지 못해 친한 친구인 자신의 이름을 말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하고 있다.
이밖에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학생회 홍보부장 고 양은 17일 학교에 전화를 걸어 안기부에 감금된 것이 아니라 몸이 아파 쉬고 있다며 금명간 학교에 나가겠다고 통보했다. 경찰조사결과 학생들 자술서에 나타난 한방병원에는 지하실은 있지만 한방병원 측은 안기부 분실이란 주장에 펄쩍 뛰며 부인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설 군이 학생들의 집단폭행을 견디지 못해 근거 없는 자백을 했을 가능성이 높고 설 군이 숨지게되자 폭행에 가담한 학생들이 자신들의 범행동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설 군을 프락치로 몰았을 것으로 보고있다.
즉 설 군이 평소 명문대학을 동경, 연세대생 행세를 하다 운동권학생들에게 프락치로 의심받게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설 군이 고교동창생에게 자주 연대축제에 함께 가자고 얘기했던 점과 설 군의 방에서 연대교지인「연세춘추」등이 발견된 점, 가족들에게 4년제 대학에 다니고 싶다고 말해온 점등으로 뒷받침되고있다.
경찰은 설 군의 이 같은「동경」의 심리적 배경을 신체·환경·학력을 둘러싼 콤플렉스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는 말을 심하게 더듬고 어릴 때 사고로 오른손3, 4번째 손가락이 절단되고 팔도 휘어 징집면제를 받았고 25평 짜리 연립주택에서 8명의 가족이 사는 등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다.
설 군은 대학 2학년 1학기 성적이 평균평점 2·08로 매우 낮았고 고교 때도 반에서 30∼40등에 머물렀는데, 이 때문에 가족들은『인종이는 지적수준이 낮아 프락치 같은 것은 했을 리가 없다』고 주장할 정도.
설사 설 군이 프락치였다 하더라도 학생들이 학생회관으로 끌고 가 각목으로 때려 숨지게 한 행위는 사회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일인데다 프락치가 아닌 것으로 밝혀질 경우 운동권학생들의 입지가 크게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경찰의 사진판독결과 구속된 6명은 모두 시위과정에서 돌·각목을 사용한 운동권 학생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학생운동이 과격·극단의 틀에서 벗어나 순수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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