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파인다이닝의 비결?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맛 찾기”

중앙선데이

입력 2020.02.08 00:21

업데이트 2020.02.08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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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2호 18면

‘한식공간’ 오너 된 ‘셰프들의 셰프’ 조희숙

공간을 새롭게 꾸민 서울 원서동 '한식공간' . 유리창 너머로 창덕궁이 내려다 보인다.

공간을 새롭게 꾸민 서울 원서동 '한식공간' . 유리창 너머로 창덕궁이 내려다 보인다.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를 비롯해 요즘 잘나가는 젊은 셰프들이 ‘셰프들의 셰프’라고 부르며 가르침을 청하는 사람이 있다. 37년간 요리를 해온 ‘한식공간’의 조희숙(61) 셰프다. 한식을 궁금해하는 해외 요리인들도 한국에 오면 앞다퉈 그를 찾는다. 지난 12월만 해도 일본 오사카의 라심(La Cime) 등 전세계 유명 레스토랑에서 날아온 셰프들이 그에게 겨울 제철 반찬과 상차림법을 배워갔다.

전통 음식을 현대식으로 재해석
재료와 방법 뒤바꿔 미각 유혹
전과 부침개로 피자 넘어서고파
발효 양념에 대한 관심 높아졌으면

호텔 및 고급 레스토랑에서 주방장 경력을 쌓아온 조 셰프가 뒤늦게 레스토랑 오너가 됐다. 본인이 컨설팅하며 운영하던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내 레스토랑 ‘한식공간’을 지난해 10월 인수한 것이다. 문 닫을 위기에 처한 한식당을 외면할 수 없었다는 그를 만났다.

최근 다시 문을 연 ‘한식공간’은 훨씬 손님친화적 공간으로 변신했다. 바닥의 턱을 없앴고, 테이블도 움직일 수 있게 했다. 통유리를 통해 온전하게 들어오는 창덕궁의 풍광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부각바구니를 준비한 조희숙 셰프.

부각바구니를 준비한 조희숙 셰프.

처음으로 오너가 되고 나니 뭐가 다른가.
“관리자로서 주방을 챙기고, 원가 따지는 일은 다 해오던 것인데, 오너 입장에서 하니 같은 일이라도 참 다르더라. 셰프 커리어에서 마지막으로 해야할 일이다 싶어 레스토랑을 인수했다. 손님의 니즈와 직원의 니즈를 살피면서 내가 원하는 음식의 퀄리티를 가져오는 것이 필요한데, 그것이 제일 어렵다.”
미쉐린 가이드 1스타를 유지하고 있는 한식공간은 점심 6만원, 저녁 12만원으로 각각 한 코스만 운영된다. 메뉴 구성은 그대로인가.
“요즘은 저녁을 거하게 먹지 않는 추세니, 좀 가볍게 해볼까 싶기도 하다.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고 있고 단품에 대한 요구도 있어서,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 있다.”
‘한식공간’의 한식은 요즘의 모던 한식과 무엇이 다른가.
“모던 한식은 크게 두 가지다. 양식 베이스에 한식적 요소를 넣거나 전통음식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이다. 내 한식은 후자다.”
‘한식공간’에 구비된 다양한 잔과 식기류. 박상문 기자

‘한식공간’에 구비된 다양한 잔과 식기류. 박상문 기자

전통적인 레시피를 현대인의 취향에 맞게 바꾼다는 게 왜 매력적일까.
“재료를 다르게 썰어보고, 조합을 새로 해보고, 조리법도 옛것과 요즘 것을 엮어보면,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게 나온다. 원재료 맛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양념의 조화가 중요하다. 그 양념은 발효를 기본으로 한다. 그 기본을 중심으로, 고정 관념에 매이지 말고 새로운 것들이 어울릴 수 있도록 매칭하는 게 필요하다. 새로운 시도가 손님들에게 잘 받아들여지면 산을 하나 정복한 느낌이다. 더 새로운 것을 연구하게 된다. 이 방식이 대중이나 외국인에게 안 맞았다면, 여기까지 오기 어려웠을거다.”
새로운 시도라면.
“호박죽을 끓인다 하자. 호박죽에 호박만 넣지말고, 떡 만드는 과정과 붙여보는거다. 떡 안에 씹히는 재료가 들어가듯, 호박 안에 콩 같은 고명을 넣는 식이다. 양식과 결합할 수도 있다. 소고기 간으로 부치는 전을 떠올리며 푸아그라로 전을 부쳐 보았다. 맛이 괜찮더라. 시도하기가 처음엔 쉽지 않지만, ‘아 이렇게도 응용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때가 한식이 더 새로워지는 시작점이다.”
‘한식공간’에 구비된 다양한 잔과 식기류. 박상문 기자

‘한식공간’에 구비된 다양한 잔과 식기류. 박상문 기자

그래서 ‘셰프들의 셰프’ ‘셰프들의 선생님’이라고들 하나보다.
“자기들보다 나이가 많다보니 그러는거다. 같은 재료와 양념을 쓰는 거 같은데 다른 맛이 나니까 그걸 구체적으로 배우고 싶어한다. 한국 식재료의 확장성에 대한 정보를 주로 묻는다. 셰프 전용 수업은 안하던 걸 해보는 시간이다. 스탠다드만 알려주고 디테일은 자기 색깔을 넣도록 한다. 맛 내고 재료 사용하는 것까지 함께하고, 그 다음은 각자가 소화하고 해석해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어내도록 한다.”
우리가 가진 한식에 대한 고정관념은 무엇인가.
“양념에 파와 마늘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필요한 것일까. ‘한국에서는 그렇게 해’라고 말할 뿐, 왜 그렇게 하는지에 대한 이유나 타당성을 잘 따지지 않는다.”
모던 한식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어떻게 발전시켜나가야 할까.
“몇 년 전에 비해 한식적 요소를 많이 가져가고 있다. 그게 시장이 원하는 것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셰프들이 경험을 쌓으면서 관점이 달라진 때문일 수도 있다. 결국 한식 요소가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외국 전문가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할 때, 좀 더 한국적인 것을 표현하면 반응이 달라진다는 걸 많이들 느꼈을거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면, 색깔은 더 깊어질 것이고.”
계절마다 바뀌는 ‘한식공간’의 요리들.

계절마다 바뀌는 ‘한식공간’의 요리들.

해외에 한국 음식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방법은.
“현지의 신선재료를 사용하면서, 한국적 조리법과 양념을 더하면 좋겠다. 대체할 수 있는 재료는 대체하고, 대체 안되는 것을 우리 걸로 가져가는 거다. 한식의 맛을 내는 기본은 양념인데, 안타깝게도 한국 식품 회사 브랜드 이름이 널리 퍼져있지 않다. 기회 있을 때마다 식품회사나 현지에도 많이 얘기한다. 양보할 수 없는 것들을 잘 지켜나가야한다. 해외에 한국 음식을 알린다는 건 산업화를 촉진하는 일이기도 하다. 문화 전파를 넘어 경제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한식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에게도 이탈리아의 피자 같은 음식이 하나는 있어야되지 않을까 하고 오래 전부터 생각했다. 쉽게 접근가능하고, 누구나 좋아하는, 그런 것이 뭘까 고민했다.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둔 문화의 한 부분으로서의 음식 말이다. 전이 그런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토핑을 입맛대로 올리는 피자처럼, 종류도 다양하게 갈 수 있으니 말이다. 세계적인 도시를 중심으로 한식과 한식 식재료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생기고 있는데, 정작 우리의 동력은 많이 꺼졌다. 한 번 더 시동을 걸 때다.”
계절마다 바뀌는 ‘한식공간’의 요리들.

계절마다 바뀌는 ‘한식공간’의 요리들.

국내에서 개개인이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음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우리가 우리 음식의 가치를 모르고 인정하지 않는게 제일 큰 걸림돌이다. 외국 사람들이 바라보는 안목에만 의존하다보니, 다들 해외에서 먼저 인정 받고 한국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나.”
이전엔 한식공방을 운영했다. 연구도 하고 수업도 했는데, 이어나갈 생각이 있는지.
“레스토랑이 잘 돼야 공방을 할 수 있는 힘도 키울 수 있겠지. 그래서 지금은 레스토랑이 지속적으로 운영이 될 수 있는 힘을 기르는데 중점을 둔다. 지속적인 연구와 공부가 없다면,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해나가는 형태의 한식은 이어지지 못할거다.”
요리 연구하는 분들이 따로 있지 않나.
“연구가 중심인 분들도 많지만, 현장에 발 디디고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한식 세계화에 대한 분석을 많이 했지만, 그 의견들이 접시 위까지 잘 올라갔던가. 이건 전문가들이 하는 연구와는 또 다르다. 연구실과 현장의 중간자 역할을 내가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한식공간’이 어떤 곳이 되었으면 하나.
“여기는 내가 하는 레스토랑이 아니라 한국 음식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공적인 장소라고 생각한다. 꾸준하게 잘 이끌어 나가고 싶다. 누가 식당을 오픈했다고 하면 ‘대박 나세요’보다 ‘오래 사랑받으세요’라고 말한다. 그게 제일 어렵기 때문이다.”

이선민 코리아중앙데일리 기자 summerlee@joongang.co.kr

조희숙 노보텔 앰버서더 서울 강남,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서울 신라호텔 등을 거쳐 주미 한국 대사관저 총주방장으로 일했다. 강단에서 학생도 가르쳤다. 아름지기 식문화 연구소 연구원으로 레스토랑 온지음의 오픈 준비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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