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메아리없는 이민자 외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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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4일(현지시간) 뉴욕의 메도코로나 공원. 간간이 비까지 뿌려 외투를 걸치지 않으면 냉기를 느낄 만큼 궂은 날씨였는데도 수만명이 몰려들었다. 히스패닉(라틴계)이 대부분이었지만 한인도 눈에 띄었고 풍물패 공연도 선보였다.

불법 체류자의 영주권 획득과 이민 노동자들의 권익향상을 요구하는 '프리덤 라이드' 지지자들의 모임이었다. 미국 최대 노조인 노동총연맹 산업별회의(AFL-CIO) 등 노동단체와 노동운동가들도 많이 참석했다. 부당한 이민법으로 생이별 중인 가족들의 재결합도 추진하고 있는 프리덤 라이드의 핵심 멤버는 50개국 출신으로 이뤄진 9백명. 이들은 지난 2주간 버스 18대에 나눠타고 미국 전역을 돌며 자신들의 주장을 폈다.

사흘 전엔 수도인 워싱턴에서 이틀간 정치인들을 만나 이민자의 인권보호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지난 2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최근 뉴욕 브루클린 대교구를 맡은 니컬러스 디마지오 주교는 "이 나라는 이민자로부터 값싼 노동력을 가져가기만 하지, 돌려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연설했고, 추레한 차림의 집회 참가자들은 큰 박수로 호응했다.

그러나 이들의 외침에 미 행정부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일 서명한 2004 회계연도(2003년 10월~2004년 9월) 국토안보부 예산에 따르면 이민서비스 업무에 18억달러가 배정된 반면 외국인 입국자 감시 및 보안업무에는 52억8천만달러가 돌아갔다. 새 이민자는 가능한 한 억제하고 현재 미국 내 9백만명으로 추산되는 불법 체류자 색출 등에 더 주력하겠다는 뜻이다.

대회 참가자들은 부시 대통령에게 대선 공약사항인 '이민신청서 수속기간 6개월 내로 단축'을 지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민신청서 적체현상이 갈수록 심해져 영주권 신청 후 발급까지 3년 이상 걸린다며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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