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번환자 코로나 의심돼 보건소 문의했지만 퇴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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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16번 환자를 처음 진료했던 광주광역시 광산구 21세기병원이 환자의 확진이 늦어진 데 대해 정부의 초동 대처를 지적하고 나섰다. 병원 측 신고로 초기에 환자를 걸러낼 수 있었지만, 중국 입국자 위주의 방역망으로 인해 확진이 늦어지는 바람에 접촉자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광주 21세기병원장 인터뷰 #중국 방문자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 #우리가 소견서 써 전남대병원 보내 #애초 확진자 모녀와 다른 환자 격리 #입원 환자 70명 별다른 증상 없어

최민혁 21세기병원장은 5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달 27일 우리 병원 내과의사가 16번 환자를 진료한 뒤 신종 코로나를 의심해 관할 광산구 보건소에 전화했지만 ‘중국에 갔다 오지 않았으니 (검사 대상에) 해당이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광주시 광산구 21세기병원이 지난달 27일 16번 환자를 전남대병원으로 전원하기 위해 쓴 진료의뢰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담겨 있다. [사진 21세기병원]

광주시 광산구 21세기병원이 지난달 27일 16번 환자를 전남대병원으로 전원하기 위해 쓴 진료의뢰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담겨 있다. [사진 21세기병원]

보건당국에 따르면 16번 환자는 태국 방콕과 파타야 등을 다녀온 뒤 지난달 19일 귀국했고, 25일 저녁부터 오한과 발열 증세가 나타났다. 지난달 27일 21세기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전남대병원을 찾았다. 전남대병원에서 폐렴약을 처방받은 뒤에도 호전되지 않자 다시 21세기병원을 찾았다. 수술을 받으러 먼저 입원해 있던 딸과 한 병실에서 8일간 머무르다 4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고재민 21세기병원 총무팀장은 “인대 봉합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왔던 딸과 동행했다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내과 진료를 받은 것”이라며 “보건소에선 해당 사항이 없으니 일반 진료를 받으면 된다고 했는데 우리가 신종 코로나 의심 소견서를 써 전남대병원으로 보냈다”고 설명했다.

이날 병원 측이 공개한 당시 진료의뢰서를 보면 21세기병원 내과의는 “(16번 환자가) 2016년 폐절제술 후 암이 진단돼 서울대병원이 추적 관찰 중”이라며 “2020년 1월 15일부터 19일까지 태국 여행을 다녀왔다. 태국 공항 출국장에서 상태가 안 좋은 사람과 접촉이 의심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25일 저녁부터 발열, 몸살, 오한 증상이 발생해 금일(27일) 내원, 변종 바이러스 폐렴이 의심돼 전원한다”고 썼다. 상병명에는 ‘변종 코로나바이러스 폐렴의증’이라고 적혀 있다. 상병 분류 기호는 J18(폐렴)로 기재됐다. 최 병원장은 “애초 16번 환자는 (신종 코로나가) 의심되는 데다 수술한 딸을 간호할 겸 환자 본인도 같은 방에서 치료를 받겠다고 해서 단독방을 쓰게 했다. 딸과 엄마를 다른 환자와 철저히 격리했다”고 주장했다. 딸은 5일 18번째 환자로 확진받았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환자가 증상이 있었고, 또 (병원에서) 코로나 검사를 요청한 것도 맞는 사실인 것 같다”며 “현 지침으로 코로나를 의심하는 사례 정의에 들어가지 않다 보니 (보건소 등에서) 기계적으로 답변했다고 보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날 당국 발표에 따르면 16번 환자와 접촉한 사람은 21세기병원에서만 272명이다. 고 팀장은 “모녀가 머문 병실이 있는 3층의 고위험 접촉 환자 23명은 1인실에 격리할 예정”이라며 “5~6층의 환자들 가운데 치료가 끝난 환자는 자가격리하고, 경증 환자는 인근 소방학교로 보내 격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은 의료진 60여 명과 환자 70여 명에 대해서도 진단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최 병원장은 “입원환자 가운데 5일 오후까지 의심 증상을 보이는 환자는 없다”고 말했다.

황수연·정종훈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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