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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휘트니가 작품 소장한 한국사진가 이정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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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이정진 작가의 ‘Opening 16’(76.5x145.5㎝). 한지에 감광 유제를 발라 인화한 뒤 이를 다시 디지털로 프린트한 작품이다. [사진 PKM갤러리]

이정진 작가의 ‘Opening 16’(76.5x145.5㎝). 한지에 감광 유제를 발라 인화한 뒤 이를 다시 디지털로 프린트한 작품이다. [사진 PKM갤러리]

‘한없이 촉각을 자극한다. 손끝은 그것을 만지려 갈등하고, 또 갈등하게 된다.’ 작품 앞에 선 관객들로부터 이같은 반응을 얻고 있는 작가는 사진가 이정진(58).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휘트니미술관,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 호주 국립미술관 등 세계 유수 미술관과 국내 주요 미술관에 작품을 두고 있는 주인공이다. 이정진은 2010~2011년 프랑스 사진가 프레드릭 브레너가 기획한 ‘This Place(디스 플레이스)’ 프로젝트에 12명 작가와 함께 유일한 아시아 작가로 참여하며 국제 사진계의 주목을 받았다.

PKM갤러리 개인전 ‘VOICE’ #묵직·섬세한 시선으로 자연 포착

그가 서울 삼청로 PKM갤러리에서 개인전(3월 5일까지)을 열고 있다.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순회 회고전 ‘이정진:에코-바람으로부터’ 이후 2년 만의 전시회다. 최근작 ‘VOICE(보이스)’의 대형 연작을 비롯해 이전의 ‘OPENING(오프닝)’ 연작 중 25점이 전시됐다.

이정진은 한지에 붓으로 직접 감광 유제를 바르고 그 위에 인화하는 아날로그 프린트 수작업을 30년간 해왔다. 한지 표면에 흑백 입자가 숨 쉬는 듯한 질감에 시간의 개념을 초월한 듯한 자연 풍광을 담아낸 화면은 회화적이라는 평가다. 이번엔 디지털 방식까지 결합했다. 한지에 인화한 뒤 고화질로 스캔하고 이를 다시 디지털로 프린트하는 방식이다.

이정진 작가의 ‘Voice 42’(108.5x153㎝). 한지에 감광 유제를 발라 인화한 뒤 이를 다시 디지털로 프린트한 작품이다. [사진 PKM갤러리]

이정진 작가의 ‘Voice 42’(108.5x153㎝). 한지에 감광 유제를 발라 인화한 뒤 이를 다시 디지털로 프린트한 작품이다. [사진 PKM갤러리]

사진이 촉각적이다.
“이미지를 온몸으로 느끼게 하고 싶었다. 사막 사진의 경우도 사막을 통해 내가 느낀 직감적인 상태를 보여주고 싶었다.”
시간이 멈춘 공간처럼 고요해 보이는 작품인데.
“정지된 장면이지만 난 그 안에 숨처럼 떨림,울림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연작 제목도 ‘VOICE’다. 내가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만은 그곳에 내가 현존한다는 느낌이 가장 충만할 때다.”
주로 자연을 테마로 한 연작인데.
“바다· 숲 ·사막 등 인적 드문 곳만 찾아다녔다. 분주한 도시의 삶과 대척점에 있는, 순수한 자연과 만나는 곳에서 마음이 열리는 느낌이니까. 생각을 비우고 자연 속에서 조우하는 대상과 공명한다고 느낄 때 셔터를 누른다.”
공명은 어떨 때를 말하나.
“사진은 ‘찰나’를 다루는 매체다. 하지만 나는 결정적 샷을 위해 나무 밑에서 빛을 기다리거나 하진 않는다. 이미 그곳에서 햇살, 공기 등이 어우러진 상태로 내게 말을 걸어왔을 때 셔터를 누른다.”

홍익대에서 공예(도자)를 전공한 이정진은 잡지 ‘뿌리깊은 나무’에서 사진기자로 잠시 일하다 미국으로 가 뉴욕대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10년 전 토마스 스투르트, 요셉 쿠델카 등 세계적 작가들과 함께 꾸린 ‘디스 플레이스’ 프로젝트를 통해 작가로서의 위상은 높아졌다. “이스라엘에서 사진을 찍는 작업이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만나지지 않는 접점을 풍경사진으로 보여주려 집중했다. 쿠델카와 나의 작품이 찬사를 많이 받았다고 기억한다. 세계에 저를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2016년엔 스위스 벤터투어미술관이 대규모 이정진 회전을 열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2014년 영국에서 『Unnamed Road(언네임드 로드)』 사진집으로 출간(재판)됐다. 오는 6월엔 미국 레디우스 출판사가 작품집  『VOICE』를 낼 예정이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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