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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릴수록 강해지는 그들’을 막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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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선욱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선욱 사회2팀 기자

최선욱 사회2팀 기자

언론은 비판했지만, 비판 뉴스를 오히려 즐기는 당사자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쪽지 예산’ 민원에 성공한 국회의원이다. 쪽지 예산은 정부·국회의 각종 심사 단계를 건너뛰고 최종 의결이 임박한 상황에서 자신의 지역구 사업 관련 예산을 쪽지나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포함시켜 통과되게 하는 방식이다. 이를 지켜본 언론은 절차 문제를 지적한다. 그런데 정작 해당 의원은 ‘실세’로 조명받거나, 지역 예산을 늘리기 위해 노력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일이 생긴다. 결과적으로 다음 선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비판을 불쾌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또 하나의 부류는 ‘전관 변호사’다. 어떤 뉴스에서 ‘○○부장 출신인 A 변호사를 앞세운’ ‘검찰 요직을 지낸 B 변호사가 합류한’과 같은 수식어가 붙으면 대중은 ‘사건의 당사자가 수사·재판 단계에서 전관 변호사의 힘을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받아들인다. 사법 절차를 통해 진실이 드러나기보다는 전관 변호사의 인맥으로 결과가 결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이 역시 비판받는 당사자인 전관들은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실세 변호사로 알려지면서 더 많은 의뢰인이 찾아올 거란 기대 때문이다.

노트북을 열며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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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법원(또는 검찰) 그만둔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최신 전관 명단에 내 이름을 넣고 그러세요. 어쨌든 고마워요.” 전관예우 관행 의혹에 대한 기사를 쓴 기자 중 일부는 이런 반응을 듣기도 한다.

성폭행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는 가수 김건모씨가 고용한 로펌도 이런 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4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할 거란 미확인 소문이 도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주도하는 로펌이어서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기자에게 “‘김건모라는 돈 많은 의뢰인이 찾는 로펌’ ‘총장 출신 변호사의 로펌’ ‘여당과의 친분설’이 한꺼번에 홍보된 셈”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때릴수록 강해지는 그들’이라는 악순환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여론의 철저한 감시다. 쪽지 예산을 밀어 넣는 의원에 대한 감시가 그 당이나 주변 조직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된다면, 재발을 막을 가능성은 커진다. 또 김건모 사건이든 다른 주요 사건에서 수사 기관이 ‘그 결과물에 대해 국민이 납득하도록 설명해야 한다’는 압박을 크게 받을수록 전관의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 정부는 수사 과정에 대한 설명과 보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해야 수사 공정성을 보장한다고 믿는 듯하다. 이대로 가다간 웃는 사람은 국민이 아니라 전관 변호사라는 기득권이 될 것이다.

최선욱 사회2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