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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절벽 현실로…11월 자연증가율은 첫 ‘마이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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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인구 절벽이 현실로 다가왔다. 지난해 11월 인구 자연 증가율이 -0.4%를 기록했다. 11월 기준으로는 사상 첫 마이너스다. 출생자 수에서 사망자 수를 뺀 인구 자연 증가분 역시 최초로 마이너스였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인구가 1619명 줄어들었다. 이런 추세면 곧 연간 인구가 감소하는 인구 ‘데드 크로스’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인구 감소는 생산·소비 축소를 유발하는 등 한국 경제·사회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출생아는 ‘최저’ 사망자는 ‘최고’ #“수도권 집중·경쟁 완화가 해법”

30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출생아 수는 2만3819명을 기록했다. 1년 전보다 1482명(5.9%) 줄었다. 11월 기준으로 통계를 집계한 1981년 이래 가장 적다. 출생아 수는 2016년 4월 이후 44개월 연속으로 월 최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조출생률(인구 1000명당 연간 출생아 수)은 5.6명이다. 11월에 조출생률이 5명대로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인구 자연증가율 첫‘마이너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인구 자연증가율 첫‘마이너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역대 최저를 기록한 출생아 수와 달리, 사망자 수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11월 사망자 수는 2만5438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1238명(5.1%) 늘었다. 같은 달 조사망률(인구 1000명당 연간 사망자 수)은 6명이다. 11월에 조사망률이 6명대로 올라선 것도 처음이다.

이에 따라 조출생률에서 조사망률을 뺀 자연 인구 증가율은 -0.4%를 기록했다. 11월 기준으로는 처음이다. 시야를 다른 달로 넓히면 2017년 12월(-0.4%)과 2018년(-0.9%) 12월에 인구 증가율이 0%를 밑돈 적이 있다. 하지만 12월은 특수성이 있다. 한파 등으로 사망자는 많고, 출산은 다음 해 초로 미루는 경향이 있어 신생아 수가 적다.

인구 자연증가 수의 감소세도 가파르다. 11월 기준 인구 자연증가 수는 2017년 2664명이었으나 2018년 1101명으로 급감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전체 인구가 1619명 줄어들었다. 월별로 12월을 제외하면 인구 자연증가 수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은 없다. 김진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인구가 11월 기준으로는 처음으로 감소세로 전환했다”면서 “올해는 연간으로도 인구가 감소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초읽기’들어간 인구 자연감소.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초읽기’들어간 인구 자연감소.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정부가 예상한 지난해 출생아 수 전망(30만9000명) 달성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지난해 11월까지 누적 출생아 수는 총 28만1784명. 전망치를 넘기려면 12월 2만7216명이 태어나야 한다. 그러나 연말로 갈수록 출생아 수는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 데다 그마저도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재작년 12월 출생아 수는 2만2767명이었다.

지난해 처음으로 연간 출생아 수 30만명이 붕괴할 것이라는 우려는 줄었지만, 출생아 수 감소 추세를 고려하면 시간 문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2016년까지 40만 명대를 유지하던 연간 출생아 수는 2017년 35만7771명, 지난해 32만 6822명으로 줄었다.

출산이 감소하는 건 결혼을 덜한 탓이다. 지난해 11월 신고된 혼인 건수는 2만493건으로 1년 전보다 2308건(10.1%) 줄었다. 81년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소다. 조혼인율(인구 1000명당 연간 혼인 건수)은 4.9명을 기록해 11월 기준 처음으로 5명 밑으로 내려앉았다. 올 1~11월 누적 혼인 건수는 21만4265명이다. 전년 동기 대비 7.2% 감소했다.

결혼 적령기에 있는 청년들은 주택 마련 등 경제적 문제와 경쟁적 교육문화 등을 미혼 확대 및 저출산의 원인으로 꼽았다.

직장인 A씨(29·여)는 “부모 세대보다 못 사는 첫 세대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며 “갈수록 경쟁적으로 변하는 교육 문화나 주거문제 등을 고려하면 다음 세대 역시 힘들 것으로 생각해, 출산에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B씨(27·남)는 “혼자 살 주택을 마련하기도 힘든 형편에 학비까지 고려하면 출산이 아니라 결혼도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복지정책으로 출산·혼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인력·자본 등 모든 자원이 서울에 집중되면서 청년들이 과도한 심리적·물리적 경쟁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 저출산의 이유”라며 “정부가 지난 10년간 보육시설을 확충하는 등 100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고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저출산이 단순히 복지가 부족해 나타난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교육 문제의 경우, 과거에는 지방국립대를 고려하는 청년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서울 내 대학이 아니면 ‘루저’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며 “출산율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지방의 도시개발, 인구이동 정책을 종합해 수도권 자원 집중과 경쟁을 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소비자 감소로 피해를 볼 기업들을 위해 인구가 증가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규제 정책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세종=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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