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이 창고에만 쌓인다'…나랏돈 풀어도 경기 안 사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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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경기 평택항 친환경차 수출현장을 방문, 인사말을 하고 있다. [평택=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경기 평택항 친환경차 수출현장을 방문, 인사말을 하고 있다. [평택=청와대사진기자단]

주요 산업지표로 본 소득주도 성장 

정부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2%를 기록한 데 대해 "나름대로 선방했다"고 자평했다. 수출 환경이 나빠진 상황에서 나랏돈(재정)을 풀어 성장률을 떠받친 것은 '발 빠른 대응'이라고도 강조한다. 재정은 문재인 정부의 성장 전략인 '소득주도 성장(소주성)'의 핵심 동력이다. 소주성은 재정 사업 등으로 일자리와 소득을 늘려 시장 내 수요를 살리고, 이후 기업의 투자·생산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추구한다. 지난해 한국 경제에서 이 같은 전략은 성공했을까.
중앙일보가 주요 경제지표를 통해 분석한 결과 생산량 증가폭이 둔화된 가운데 공장에서 만든 제품이 잘 팔리지 않아 창고에 쌓이는 재고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서 기업의 투자 여력도 줄었다. 소주성 전략이 잘 먹히지 않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산업 생산, 文 정부 출범 후 둔화 

28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11월 기준) 전(全) 산업 생산지수는 109.7을 기록했다. 이 지표는 국내 모든 산업의 생산활동 동향을 지수화한 것이다. 기준연도 2015년보다 제품과 서비스 생산이 더 많으면 100 이상, 적으면 100 이하로 나타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 이 지표는 꾸준히 올랐다. 2015년부터 2017년(108.2)까지 2년 간 6.6포인트 상승했다. 그러나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는 1.5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생산 활동이 그만큼 둔화했다는 의미다.

산업별 생산지수를 보면 경기 전반에 영향이 큰 제조업·건설업의 생산지수는 최근 2년 새 모두 하락했다. 하락폭은 제조업 0.2포인트, 건설업 19.2포인트로 부동산 규제에 따른 건설 생산 하락폭이 두드러졌다. 산업 생산지수가 오른 분야는 재정 사업 영향이 큰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 공공행정 관련 산업이었다. 한국의 '성장 엔진'이라 일컫는 제조업 등의 생산은 둔화하고 재정이 주도한 저수익 사업 분야에서만 생산이 활발해진 것이다.

전 산업 생산지수와 산업별 생산지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전 산업 생산지수와 산업별 생산지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창고에 쌓여 재고↑, 팔리지 않아 출하↓

문제는 재고지수다. 공장에서 생산한 상품이 얼마나 창고에 쌓이는지를 살펴보는 광공업 재고지수는 최근 2년 새 11.6포인트 상승했다. 현 정부 출범 전인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오른 폭(3.7포인트)의 3배가 넘는다. 상품이 창고에 쌓이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의미다. 반면 상품이 시장에서 팔리는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광공업 출하지수는 꾸준히 오르다 최근 2년간 4.2포인트나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설비투자 증가율이 8.1% 감소한 것은 최근 재고·출하 흐름의 결과라고 분석한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지난해 국내총생산의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생산물이 팔리지 않고 창고에만 쌓이는 양상이 눈에 띈다"며 "경제 위기 이전엔 늘 재고 증가가 선행했기 때문에, 정부는 이 같은 지표를 허투루 넘겨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광공업 생산·재고·출하지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광공업 생산·재고·출하지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내수용 제조업도 악화…"설비유지도 어려워" 

수출은 물론 내수용 제조업 시장도 크게 위축했다. 소주성은 '국내 수요 증가→내수 제조업 생산·판매 활성화'의 선순환도 추구했지만, 이런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최근 2년간 광공업 출하지수는 수출 부문에서 1.5포인트 떨어졌지만, 내수 부문에선 수출보다 더 크게(-6.3포인트) 떨어졌다. 정부는 최근 경기 부진 원인을 미·중 무역전쟁과 브렉시트(Brexit) 등 대외 변수 위주로 찾고 있지만, 내수 시장 역시 기업 투자 위축으로 한국산 기계·장비 등 제품을 구매할 여력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광업·제조업 내수·수출 출하지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광업·제조업 내수·수출 출하지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제조업체들이 설비투자에 쓸 돈이 떨어진 것이 내수 출하지수가 크게 하락한 이유"라며 "지금은 기존 설비의 유지·보수조차 힘들어진 기업이 많아졌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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