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대형악재 없었는데 최악 경제성적…정책이 저성장 부채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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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해 막판에 나랏돈을 대거 풀며 2%대 성장률을 가까스로 지켜냈다. 이전에도 연간 성장률이 2%에 못 미친 적은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고, 외환위기의 충격을 받았던 1998년엔 마이너스 성장도 경험했다. 하지만 지난해 2%는 대형 악재도 없이 받아 든 성적이다. 미·중 무역분쟁, 반도체 경기 부진이 한 해 내내 부담을 줬다지만 외환위기·금융위기와 비할 바가 아니다.

경기 둔화로 민간 분야 내리막 #규제·진입장벽 없애 돕기는커녕 #노동시장 직접 개입해 꼬이게 해 #전문가들, 올해도 저성장 예측

물론 이런 저성장은 전혀 예상 못 했던 일이 아니다. 나라가 성장해 경제 규모가 커지면 잠재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가 가진 노동과 자본, 생산성을 총동원해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의 최대치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90년대까지 7%대였던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16~2020년 2.5%로 하락했다. 한국은행은 2019~2020년 잠재성장률을 2.5~2.6% 정도로 보고 있다. 기관별로 차이가 있지만 2026년 이후 1%대로 떨어질 것이란 점에는 큰 이견이 없다.

연도별 GDP(국민총생산) 증감률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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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계속 낮은 저성장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 둔화로 민간의 활력이 떨어진 가운데 정부의 정책이 되레 잠재성장률 둔화 속도를 재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잠재성장률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비효율성을 개선하는 게 중요한 과제인데 오히려 일방적인 근로시간 단축,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직접 노동시장에 개입해 상황을 악화시켰다”며 “각종 규제와 진입장벽을 완화하고 신산업 육성을 위한 정교한 계획부터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단기 재정지출로 민간 부진의 공백을 메운 측면도 있다. 2018년만 해도 성장률(2.7%) 중 민간 기여도는 1.8%포인트, 정부 기여도는 0.9%포인트였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2% 중 1.5%포인트가 정부 몫, 0.5%포인트가 민간 몫으로 뒤바뀌었다. 2009년 이후 10년 만에 정부의 성장기여도가 민간을 넘어선 것이다.

지난해 2% 성장률을 사수한 것은 정부가 떠받친 결과라는 의미다. 특히 지난해 4분기에 전 분기 대비 1.2% ‘깜짝’ 성장한 덕에 연간 2% 성장이 가능했는데, 4분기 정부 기여도는 1%포인트로 민간의 5배에 달했다. ‘정부주도 성장’ ‘재정주도 성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순환 측면에서 어려울 때 정부가 지출을 늘리는 건 맞지만 대부분 복지에 집중되다 보니 새로운 산업이나 인재를 키우는 등 민간 투자를 북돋는 데 한계가 있다”며 “민간의 투자 의욕을 고취할 만한 정책적 뒷받침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2% 성장률에 대해 ‘선방’이라고 표현하며 “반등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일단 올해 전망은 지난해보다 괜찮다. 정부와 한국은행·한국개발연구원(KDI)·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은 올해 성장률을 2.2~2.4%로 전망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예측대로 성장하더라도 수치상으로만 호전된 것일 뿐, 저성장에서 벗어난 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인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 상당히 부진한 상황에 대한 기저효과가 크다”며 “경제가 별로 좋아지지 않아도 수치상으로는 지난해보다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장원석·김도년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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