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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김광석과 송강호의 사랑방···'학림다방' 34년 그 시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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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림다방 사장 이충렬 씨가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학림다방 사장 이충렬 씨가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30년 동안 공간은 변한 게 없는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변하더군요. 우리들의 시절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을 한 장소에서 계속 지켜본다는 건 참 묘한 기분입니다.”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 이충열(65) 대표의 말이다. 1956년 종로구 대학로 119번지에 문을 연 학림다방은 서울대학교가 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지성인의 단골다방으로, 음악·미술·연극·문학계 인사들의 사랑방으로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충열 대표가 이곳을 인수한 건 1987년이다. 원래 주인이 다방을 팔면서 정체모를 레스토랑으로 망가진 것을 이 대표가 인수해 옛날 학림다방으로 복원하고, 벌써 34년이 흘렀다.
군대에서 사진병으로 복무했던 이 대표는 지금껏 학림다방 안팎의 세월을 카메라로 기록해왔다. 오늘부터 2월 9일까지 서울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 갤러리에서 열리는 사진전 ‘학림다방 30년’이 그 결과물이다.
흑백필름 500롤, 커트 수 1만5000장. 그 중에 고른 60여 장의 사진이 ‘젊은 날의 초상’ ‘창밖으로 흐른 시절들’ ‘학림다방’ 3개 카테고리로 나뉘어 전시됐다.

학림다방 30년 사진전-학림다방 오래 전 모습. [사진 이충열]

학림다방 30년 사진전-학림다방 오래 전 모습. [사진 이충열]

학림다방 30년 사진전-김광석(1993년). [사진 이충열]

학림다방 30년 사진전-김광석(1993년). [사진 이충열]

학림다방 30년 사진전-분장실의 송강호(1991년). [사진 이충열]

학림다방 30년 사진전-분장실의 송강호(1991년). [사진 이충열]

‘젊은 날의 초상’에선 해사하게 웃는 가수 김광석을 비롯해 송강호, 황정민, 설경구 등 중견배우들의 초년 시절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이들을 이끌어온 가수이자 연출가 김민기의 묵직한 모습도 이 섹션에서 만날 수 있다.
‘창밖으로 흐른 시절들’에선 학림다방 2층에서 내려다본 대학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 섹션 대부분의 사진 속에 걸려 있는 플라타나스 나무 두 그루가 한 장소에서 찍은 사진들임을 말해주고 있다. 민주항쟁이 한창이던 80년대 후반의 데모 행렬과 2002년 월드컵 때의 축제 인파의 대조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류가헌 갤러리의 박미경 관장은 “같은 장소에서 30년 넘게 달라지는 풍경을 담는 일은 드문 일이라 사진계에서도 진귀한 사진으로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학림다방 30년 사진전-1989년 학림다방 2층에서 내려다 본 대학로 데모 현장. [사진 이충열]

학림다방 30년 사진전-1989년 학림다방 2층에서 내려다 본 대학로 데모 현장. [사진 이충열]

학림다방 30년 사진전-2002년 학림다방 2층에서 내려다 본 월드컵 응원 인파. [사진 이충열]

학림다방 30년 사진전-2002년 학림다방 2층에서 내려다 본 월드컵 응원 인파. [사진 이충열]

‘학림다방’ 섹션에선 시간이 멈춘 듯 한결같은 풍경으로 손님을 맞아온 학림다방 내부와 그 곳의 또 다른 풍경으로 찾아왔던 단골들, 시인 김지하·윤구병, 번역문학가 이덕희, 정치인 백기완 등을 비롯해 이름 모를 손님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지난 21일 학림다방에서 이 대표를 직접 만나 사진 속에 숨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31살의 나이에 학림다방을 인수한 계기는.
“당시 액수로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를 내는 조건으로 시작했다. 1년 후 주인이 완전히 맡아보라며 좋은 가격에 내줘서 지금까지 왔다. 난 서울대학교를 안 나왔으니 큰 추억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우리 세대의 우상인 김민기씨와 여러 예술인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선뜻 결심을 하게 됐다. 다시 생각해봐도 학림다방을 인수한 건 내 인생의 ‘행운’이었다. 아니었으면 그 수많은 인연을 어떻게 만났을까.”  
학림다방 30년 사진전-김민기(1999년). [사진 이충열]

학림다방 30년 사진전-김민기(1999년). [사진 이충열]

그는 김민기를 학림에서 처음 만난 날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갖고 있던 김민기의 음반을 틀었더니 당장 끄라며 호통만 쳤다는 것. ‘자기 음반 트는 걸 너무 싫어하는 형님’과는 지금 수영장을 함께 다닐 만큼 친해졌고, 그의 부탁으로 공연 무대 보도자료 사진을 찍게 된 게 지금 사진전의 일부가 됐다.

유명 배우들의 초창기 모습이 신선하다.  
“연우무대와 학전소극장의 포스터와 보도 자료용 사진을 찍었을 때다. 94~97년 ‘지하철1호선’ 포스터엔 ‘사진=이충열’이라고 적혀 있다. 무대 사진을 찍고 남은 필름으로 연습실·분장실에 있던 배우들을 찍었는데 그걸 나도 이번에야 찾았다. 가난했지만 열정만은 대단했던 때라 모두 풋풋하다.”    
학림다방 30년 사진전-설경구(1999년). [사진 이충열]

학림다방 30년 사진전-설경구(1999년). [사진 이충열]

학림다방 30년 사진전-황정민(1999년). [사진 이충열]

학림다방 30년 사진전-황정민(1999년). [사진 이충열]

모두 흑백사진이다. 이유가 있나.      
“라이카 M6 카메라를 중고로 구입한 후 사진 찍고 현상하는 작업이 너무 좋아 학림다방 3층에 암실을 만들고 매일 작업했다. 컬러 사진은 현상·인화 과정이 복잡하고 약품도 많이 들어서 현상소에 맡겨야 했는데 값이 비쌌다. 결국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흑백 사진만 찍게 됐다. 디지털 카메라도 사봤지만 직접 현상하면서 어떤 사진이 나올까 기대하는 순간의 재미가 없으니 잘 안 쓰게 되더라.”
학림다방 30년 사진전-백기완. [사진 이충열]

학림다방 30년 사진전-백기완. [사진 이충열]

유명 단골들은 좋아하는 자리도 있었을 것 같다.  
“대부분 창가자리를 좋아했다. 백기완 선생은 두 달 전까지도 매일 아침 창가 구석 자리에서 커피를 드셨다. 요즘 건강이 안 좋아 다방에 못 오시는 게 걱정이다. 작가 홍세화씨는 귀국 후 공항에서 바로 학림으로 달려와 기자회견을 했다. 수필가 전혜린씨가 자살하기 전날 친구였던 문인 이덕희씨를 만난 자리도 창가자리였다.”    
학림다방 30년 사진전-문인 이덕희(1990년). [사진 이충열]

학림다방 30년 사진전-문인 이덕희(1990년). [사진 이충열]

서울법대 시절 ‘학림다방 비품’으로 불렸던 이덕희씨의 학림 사랑은 유명하다. 이 대표가 인수하기 전, 망가진 학림을 보고 실망한 그는 한동안 대학로를 걸을 때 학림을 피해 멀리 돌아다녔다고 한다. 옛날 학림 분위기를 되찾은 후 다시 발걸음 하게 된 그는 지병으로 작고하기 전날까지도 이 대표가 택배로 보낸 학림다방 커피 한 모금을 마시기 위해 억지로 밥을 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학림다방은 수많은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학림다방의 전화기는 모두의 전화기였다. 우편주소를 학림으로 해놓고 우편물을 받았던 사람도 많다. 메모판에는 항상 누군가에게 전하는 쪽지가 가득했고, 이 대표가 교환수처럼 전해준 전화 메모는 또 얼마나 많았을까. 지금의 젊은 세대는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풍경들이다. 덕분에 학림은 오래 전 배경의 영화·드라마 속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 배우 김수현과 김창완이 바둑을 두며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 대표적이다.

34년간 '학림다방' 지켜온 이충열 대표 #서울 갤러리 '류가헌'에서 사진전 열다

학림다방 30년 사진전-학림다방 안 손님들(1988년). [사진 이충열]

학림다방 30년 사진전-학림다방 안 손님들(1988년). [사진 이충열]

‘별에서 온 그대’ 촬영이 도움이 됐나.
“젊은 친구들이 많이 찾아오는 계기도 됐지만 난처한 일이 더 많았다. 국내 여행사들이 저가 투어 상품을 만들어 중국 관광객들을 떼로 몰고 왔다. 20~30명씩 한꺼번에 들어와 사진 찍는다고 소란을 피우는 통에 단골손님들은 그냥 돌아가는 일이 빈번했다. 관광공사와 서울시에 전화해서 이 투어 못하게 하라고 항의도 여러 번 했다.”      

요즘도 오후에는 학림다방을 찾는 젊은이들이 많다. 복고풍의 유행 때문이다. 80년대부터 유명했던 학림의 비엔나커피와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이 인증 샷 찍기의 포인트다.

첫 번째 개인 전시를 열게 된 소감은.  
“요즘은 사진 잘 찍는 친구들이 많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진의 역할은 기록이 우선이니, 잘 찍는 게 뭐 대수인가 싶다. 30년간 학림을 스쳐간 사람들을 좀 더 부지런히 기록했다면 근대 인물사 한 권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난 사진작가 기질이 없나보다.(웃음) 그래도 오랫동안 학림과 사진기를 놓지 않은 것에 보람을 느낀다.”  

“공간이 없으면, 시간은 어디에 기억될 것인가” 소설가 정찬이 『학림다방 30년』 사진집에 쓴 서문의 제목이다.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이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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