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새벽부터 줄 서는 여권발급 대란 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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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과 휴가철을 맞아 여권 발급 수요가 폭주하고 있다. 26일 수원시 경기도청 여권민원실에 새로 발급된 여권이 쌓여 있다. N-POOL 경인일보=임열수 기자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사는 주부 김명자(47)씨는 아들의 여권 발급 신청을 위해 27일 오전 4시 집을 나섰다. 김씨가 노원구청에 도착한 시간은 4시30분. 새벽부터 서두른 덕분에 김씨는 여권 신청 번호표 5번을 받아들었고, 8시30분 구청 업무 개시와 함께 여권신청서를 냈다. 하지만 김씨 뒤에 남은 300여 명은 구청 1층의 민원여권과에서 지하식당의 연결 통로에 수 십m씩 줄을 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번호표를 받지 못하고 돌아간 사람도 60여 명에 달했다.

여권 발급을 대행하는 서울 시내 10개 구청마다 요즘 매일 반복되는 장면이다. 하루 발급분에 맞춰 구청마다 일정한 숫자의 접수 번호표를 나눠주다 보니 이를 먼저 받기 위해 장사진이 펼쳐진다. 접수표를 받았더라도 뒷번호인 사람은 실제 접수까지 수 시간씩 기다려야 한다.

◆ '여권 발급 대란' 왜 생겼나=여권 발급이 이처럼 힘들어진 이유는 발급 방식의 변화와 여권 수요의 급증을 들 수 있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여권 발급은 2003년 230여만 건, 2004년 270여만 건, 2005년 311만여 건 등으로 꾸준히 증가해 왔다. 올해의 경우 상반기에 210만 건, 연말까지는 400만 건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 들어 조기 어학연수.유학.해외관광 등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도입된 '전사식' 여권 발급 시스템도 발급 시간을 늘렸다. 종전엔 구청 직원이 여권에 직접 사진을 붙였지만 지금은 신청서와 사진을 스캐너로 입력해 처리하는 과정이 추가됐다. 이 때문에 발급 시간이 종전 7일에서 8~9일로 늘었다.

구리.의정부 시 등 여권 신청 접수만 대행하는 지자체의 경우 여권 발급에 20일 이상 걸리자 서울로 원정 신청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한 원인이다.

경기도의 여권 발급 기관인 경기제2청사는 직접 접수한 신청은 8일 만에 처리하는 데 반해 타 지자체의 신청 건은 15일 만에 해주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의 경우 전체 발급 신청 건수의 40%가 지방 수요다.

◆ 대책은 없나=서울 시내 구청들은 여권 발급 구청을 25개 전 구청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구 2000만 명이 사는 수도권의 여권 업무를 서울 시내 10곳, 경기도 내 5곳의 기관에서 처리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여권발급기와 인력을 지원하는 외교통상부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올해 여권 신청이 급증할 것을 미처 예상하지 못해 이에 따른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국과 비자면제협정이 체결될 경우 전자여권을 도입해야 하는 것도 발급기를 늘리지 못하는 이유다. 외교부 한 관계자는 "대당 1억원이나 하는 여권발급기를 덜컥 늘려놨다가 갑작스럽게 전자여권 도입으로 무용지물이 될 경우 그 책임을 누가 지겠느냐"고 말했다.

서울시는 27일 10개 구청에 3억5000만원의 야근비를 지원해 여권 발급 업무를 오후 6시에서 9시까지 늘리는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구청들은 근본적 해결책은 못 된다는 입장이다.

노원구 등 일부에서는 전액 국고로 귀속되는 구청당 수십억원씩의 발급수수료 중 일부를 구청에 돌려 그때그때 유연하게 인력을 늘리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신준봉.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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