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섹시한 제목 없나 '애널' 보고서는 전쟁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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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하한가보다 더 두려운 세 글자는…'

삼성증권 정영완 투자전략팀장이 리서치 보고서 '주간 삼성 투자가이드'에 쓴 보고서 제목이다. 투자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질문의 답은 뭘까. '너만 사' 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귓속말로 "너한테만 말하는데 내가 세력을 알고 있으니까…너만 사"라고 말하면 이는 '신이 내려준 기회'가 아니다. 대신 '죽음의 속삭임'이란다. 친구가 아무리 달콤한 말을 했더라도 위험은 결국 투자자가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보고서 제목은 읽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섹시하다. '이제는 그만 버리고 싶어질 때'.(무엇을?). '대한민국 모범근로자 A씨의 비극'.(어떤 비극인데?).

내용도 좋지만 투자자의 가슴을 파고드는 이런 제목으로 정 팀장의 보고서는 업계에서 '베스트 셀러'로 꼽힌다.

펀드 매니저나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는 증권사 애널리스트(연구원)들의 보고서 제목이 감각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내 보고서를 알리기 위한 애널리스트 간의 경쟁이 치열해진 탓이다.

◆ 튀어야 산다=증권 리포트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Fn가이드에서 최근 일주일 간 조회수 1위에 오른 보고서의 제목은 '화씨지벽(和氏之璧): 보옥이 되기 전에 매수하라!'였다.

'화씨의 구슬'이라는 뜻의 화씨지벽은 천하의 명옥(名玉)을 이르는 말. 좋은 주식을 빨리 사라는 뜻을 이렇게 표현했더니 투자자들이 관심을 기울인 사례다.

매일 300~400개씩 시황.기업분석 보고서가 쏟아지다 보니 손님을 끌기 위해서 이렇게 튀는 제목이 일상화했다. 삼성투신 변희구 수석 펀드매니저는 "제목이 튀는 보고서는 품질도 대부분 좋아 손길이 먼저 간다"고 말했다.

한국밸류운용 이채원 전무도 "기발한 제목을 달려고 노력하는 애널리스트일수록 독창적으로 해석한 보고서를 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같은 기업을 설명할 때도 '신규사업 진출, 실적 호전 전망' 이라는 제목보다는 '신형엔진 장착으로 3심방 2심실이다!'라는 제목이 더 관심을 끈다는 얘기다.

◆ 축구용어도 등장=이처럼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보고서 제목도 유행을 탄다. 고사성어 끌어쓰기는 일반화했고 월드컵 열기가 뜨거워졌을 때는 보고서에도 '옐로 카드' '오프사이드' 등 축구 냄새가 물씬 풍기는 단어들이 속출했다. 활기를 잃고 반칙을 일삼는 주식시장에 '옐로 카드'를 주고, 시장의 분위기를 모른 채 과격하게 투자하는 투자자에게는 '오프사이트'를 선언하는 식이다.

심지어 한 애널리스트는 프랑스의 지단 선수가 이탈리아의 마테라치 선수를 머리로 들이받은 것을 빗대 '지단하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검토 중이다. 박스권에 걸쳐 있는 매물대를 들이받고 주가가 뛸 것이라는 의미를 '지단하다'라는 제목으로 전달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튀는 제목 무용론자도 있다. 모 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어차피 관심 있는 업종의 보고서는 제목에 관계없이 다 읽기 때문에 제목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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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삼성증권 투자정보팀 팀장

1964년

[現] 한국밸류자산운용 전무(CIO)

1964년

안혜리.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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