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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규제 질려 직접 규제 깨러 나선다···정당 만드는 판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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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IT벤처·스타트업계 창당 선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 테크노밸리 전경. 임현동 기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 테크노밸리 전경. 임현동 기자

판교발(發) 정치혁명이 가능할까. 난공불락인 한국의 규제환경에 지친 IT벤처·스타트업인들이 직접 정당을 만든다. 거미줄처럼 촘촘히 짜인 한국의 규제환경을 원내에서 직접 혁파하겠다는 게 목표다. 고영하(68) 한국엔젤투자협회 회장, 이금룡(69) 도전과나눔 이사장, 고경곤(57)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장 등이 주축이다. 지난 16일 서울 강남 팁스타운에서 열린 얼리버드챌린지포럼에서 100여 명의 IT 벤처인들이 모인 가운데 이들은 가칭 ‘규제개혁 비례당’ 창당을 공식화했다.

[뉴스분석]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등 IT 기업인들이 기존 정당을 통해 원내에 입성한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업계에서 직접 창당 움직임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왜 굳이 정당까지 만들려는 것일까.

① 도대체 왜?

지난 16일 인터넷전문가협회가 강남구 팁스타운에서 개최한 얼리버드챌린지포럼에 참석자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들은 가칭 규제개혁 비례당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앞줄 왼쪽에서 4번째가 이금룡 도전과나눔 이사장, 6번째가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 회장 뒷줄 왼쪽에서 6번째가고경곤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장. [사진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

지난 16일 인터넷전문가협회가 강남구 팁스타운에서 개최한 얼리버드챌린지포럼에 참석자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들은 가칭 규제개혁 비례당을 만들기로 뜻을 모았다. 앞줄 왼쪽에서 4번째가 이금룡 도전과나눔 이사장, 6번째가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 회장 뒷줄 왼쪽에서 6번째가고경곤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장. [사진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

무엇보다 기성 정치권에 규제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고경곤 협회장은 “이명박·박근혜·문재인 대통령 모두 취임하고 제일 먼저 규제혁신을 얘기했지만 지난 20년 간 우리는 클라우드·빅데이터·드론·자율주행·블록체인·공유경제까지 모두 규제 때문에 실기했다”며 “거대 정당에 초선 의원으로 들어가봐야 높은 분들 앞에서 말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만큼 우리가 직접 당을 만들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재웅 쏘카 대표(왼쪽)와 타다 운영사 VCNC의 박재욱 대표. [연합뉴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재웅 쏘카 대표(왼쪽)와 타다 운영사 VCNC의 박재욱 대표. [연합뉴스]

특히 '타다 사태' 영향이 컸다. 이재웅 쏘카 대표와 타다 운영사인 VCNC 박재욱 대표 등이 여객자동차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되고 ‘타다 금지법’으로 불리는 개정안이 나오자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한다. 이금룡 이사장은 “타다 사태를 보며 절망했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첨단 기술의 혜택을 누리게 되는 ‘기술의 민주화’를 정부가 막고 있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타다만 봐도 주 고객인 30대 여성이 길에서 아이 데리고 택시 타는 게 힘들다 보니 안전하고 쾌적한 타다를 선호해서 성장한 건데, 그걸 정부가 나서서 ‘너 타지마’라고 하는 게 말이 되냐”고 지적했다. “국민이 더 많은 혜택을 보려면 스타트업들이 성장해야 하는데 정부가 막고 있다”는 것이다.

② 기폭제는? 

임계치까지 차오른 IT 업계의 불만을 수면 위로 밀어 올린 것은 선거법 개정이다. 오는 4월 15일 치러질 21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도입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군소정당의 원내 진입 가능성을 높였다. 전국 득표율 3%를 넘기면 비례대표 의원을 배출할 수 있다. 고영하 회장은 “새로운 기술로 뭔가를 하려 하면 전부 다 정부에 허가받아야 하는 상황이 말이 되냐”고 반문했다. 이어 “국회에서 교두보 1석만 확보하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감시하고 주장할 수 있다"며 "기성 정치권이 자극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권력의지가 전혀 없고 정치 세력화할 생각도 전혀 없다”며 “오직 규제개혁이라는 주제 하나만 가지고 정당을 만드는 실험”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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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선거 준비는 어떻게?

고영하, 엔젤투자협회장. [중앙포토]

고영하, 엔젤투자협회장. [중앙포토]

가칭 ‘규제개혁 비례당’은 20일부터 창당 준비를 시작한다. 모든 활동은 모바일에서만 할 예정이다. 창당선언문이 마련되면 카카오톡과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발기인을 모집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후 3월 17일까지 전국 5개 도시에 총 5000명의 당원을 모집한 다음 정당 등록을 할 계획이다. 고경곤 협회장은 “현재 뜻을 같이하는 이들 대부분은 SNS 활동이나 모바일 앱 제작에 능한 사람들"이라며 모든 활동은 온라인으로 하고 비용을 최소화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성 정당이 하는 오프라인 대규모 집회는 전혀 할 생각이 없다”고 덧붙였다.

선거운동도 돈을 안 쓰는 게 핵심이다. 비례대표가 될 후보자는 30~40대 IT 기업인 중에 찾을 생각이다. 고영하 회장은 “우리는 후배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후원하는 역할만 할 뿐”이라며 “3%의 지지를 얻어 원내 1석을 확보하는 게 우선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

④ 현실 가능성은?

이금룡 도전과나눔 이사장. [사진 도전과나눔]

이금룡 도전과나눔 이사장. [사진 도전과나눔]

현재로선 이들의 성공 가능성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선거법 개정 이후, 비례대표 1석을 노리는 군소정당이 급증하고 있다. 다만, IT업계 출신인 이들은 IT, 모바일, 디지털의 폭발력을 강조했다. J 커브(J자 모양 급상승)를 그리는 스타트업의 성장 곡선처럼 출발은 미약하지만 규제개혁이라는 성과를 얻어낼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이금룡 이사장은 “한번 불이 붙기 시작하면 의외의 파괴력을 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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