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 이겨낸 그들의 끈기에 힘 솟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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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요즘 신문을 읽고 있노라면 갑자기 온 세계가 우리 앞에 가깝게 다가오는 것 같은 착각을느끼게 된다.
아마도 한민족 체육대회에 참가한 중국·소련 등 우리 앞에 닫혀있던 세계에서 살아 온 우리 동포들의 이야기가 먼 이역 땅을 가까운 이웃처럼 느끼게 하나보다.
전과 비교하면 세계가 너무나도 갑자기 변하고있는 것 같다.
2년전 로마에서 있었던 학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이였다. 비행기 여정에 따라 들르게된 곳이 우연히도 새벽녘 모스크바의 공항이었다. 급유를 위해 잠시 머문 짧은 동안 나는 일본항공회사 소속의 잡지대에 진열된 일본잡지를 손에 들었다.
그 잡지에는「중국 광동 연안에 서식하는 물고기의 생태」를 비롯한 소련과 중국에 관한 상세하고 전문적인 글들이 실려 나를 놀라게 했다. 그 글들을 읽으며 나는 그 동안 우리가 두 눈을 가졌으면서도 여지없이「외눈박이」로 살아왔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국가 영역인 동구와 중국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지식은 전무 상태였으니 말이다.
세계의 절반이, 있어도 없는 것으로 우리 앞은 가로막혀 있다는 사실이나를 암담하게까지 느끼게 했다.
요사이 갑자기 세계가 우리 앞에 열리기 시작해 중국과 소련에 사는 우리의 피와 살을 나눈 동족이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가꾸고 꿈에도 그리운 조국을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얘기를 들을 때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솟구치는 힘 같은 것을 느끼곤 한다.
더구나 그들이 온누리에서 치른 고난과 역경, 시련과 성공에 관해 들을 때는 우리가 한참동안 잊고 살아온「은근과 끈기의 정신」을 되찾은 듯 싶어 감회마저 깊다.
유대인보다 강인한 억세풀이라고나 할까, 또는 불사조의 후예들이라고나 할까. 온 세계에 흩어져 사는 우리 동포가 힘을 함께 할 때 아마도 머지않아 세계가 또 한번 우리를 보고 놀라게 되는 새로운 기적을 이루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해본다. 양혜숙<이대교수·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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