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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北, ‘김정은 생일’ 이용해 장난친다고 생각했을 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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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장진영 기자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장진영 기자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가 “김정은으로서는 자기의 생일을 이용해 미국이든 한국이든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해) 화를 냈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김계관 외무성 고문이 지난 11일 발표한 담화에 대한 분석이다. 이 담를 통해 북한은 청와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김정은 위원장 생일 축하 메시지를 대신 북에 전달했다고 밝힌 데 대해 “남조선이 주제 넘게 설레발 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태 전 공사는 자신의 블로그 ‘남북동행포럼’에 12일 올린 글에서 김 고문이 담화에서 사용한 단어들을 나열하며 "정상 외교관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될 표현들"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거칠게 반응한 이유를 알려면 북한의 내부구조를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모든 기관이 김정은에게 수직으로 종속돼 있다”면서 “북·미협상, 핵전략, 전략무기개발 등과 같이 최고급 비밀사항은 절대로 부서들간 공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 축하 친서가 오면 외무성이 이를 김정은에게 즉시 보고 했을 것이고 김정은도 그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태 전 공사는 “그런데 갑자기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깜작 회동했는데, 그때 나온 긴급 메시지를 전달하겠다고 북한에 통지하니 북한 통일전선부로서는 미국으로부터 핵 문제와 관련한 새로운 제안이 왔을 것으로 판단하고 김정은에게 메시지를 전달받겠다고 보고하여 승인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의 ‘통큰 제안’이 오는가 가슴을 조이며 기다렸을 것인데 막상 통전부에서 보고 올라온 내용 보니 외무성이 이미 보고한 생일축하 메시지였던 것”이라는 것이 그가 추정한 전말이다.

태 전 공사는 “북한으로서는 미 대통령의 긴급 메시지가 있다고 하여 성급히 받아놓고 보니 이미 전달받은 것이고, 다시 뒤돌아보니 미국이 한국을 내세워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을 갈망하고 있는지 아닌지 속내를 은근슬쩍 떠보려고 한 수에 넘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매우 불쾌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외무성에 이번 기회에 미국을 향해 입장을 똑똑히 밝혀 그런 식으로 놀지 말라고 단단히 못을 박으라고 했을 것”이라면서 “한국 측을 향해서도 사람 깜짝 놀라게 하지 말고 가만있으라고 엄포 좀 놓으라고 지시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 전 공사는 “결국 미국이 미끼를 던져 보았는데 북한이 뒤늦게 미국의 수를 알아채고 미끼를 물지 않은 셈”이라고 봤더.

그러면서 태 전 공사는 “앞으로 북한 통전부나 우리 정부나 다 같이 남북문제가 아니라 미국 입장을 대신 주고받을 때는 충분한 소통이 있어야 할 것 같다”며 “그렇지 않으면 북한 표현대로 긁어서 부스럼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김계관 고문은 11일 담화에서 김 위원장의 생일 축하 메시지를 담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친서를 직접 받았다면서 “북·미간에는 (남한의 중재가 필요없는) 직접적인 연락 통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설레발’, ‘호들갑’, ‘바보 신세’등의 어휘를 사용해 남한을 맹비난했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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