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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3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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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내일은 초인간

내일은 초인간

너희들 보온병 원리 알아? 생각해보면 보온병이 얼마나 신기해. 따뜻한 걸 따뜻하게 보존하고, 차가운 건 차갑게 보존하잖아. 인간의 상식으로 생각해보자면, 냉장고는 계속 차가움을 유지하고 보일러는 계속 뜨거운 걸 유지하지만, 보온병은 아니거든. 보온병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을 품어. 따뜻한 건 따뜻하게, 차가운 건 차갑게. 상대방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것이지. 우리가 정말 추구해야 할 인간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이 들어. 자신보다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한 거야.  김중혁 『내일은 초인간』

김중혁의 팬이라면, 김중혁다운 문장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작가도 그랬는지 바로 뒤 문장에서 또 다른 인물의 입을 빌려 “어디서 배워먹은, 못된 닭살 멘트야. 저리 썩 꺼지지 못할까”라고 썼다. 이런 게 바로 김중혁이다.

기발한 상상력과 능청스러운 유머, ‘농담 같은’ 작품세계로 유명한 김중혁의 새 소설이다. 팔 길게 늘이기 선수,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는 여자 등 자신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쓸모없는 초능력 보유자들이 ‘초클(초인간클랜)’을 결성하고 세상을 바꾸는 작전을 편다. 구독 독서 앱 ‘밀리의 서재’가 선보이는 오리지널 한정판 종이책이다.

“우린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란 걸 잘 알아. 그래서 특별해졌어. 서로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특별하게 생각해. 우린 어쩌면 조금씩 다 아픈 사람들이고, 아파서 서로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고, 어딘가 모자란 사람들이야.” 가볍게 읽다가 가슴이 싸해진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