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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Blog] '영화제 시상식을 영화처럼' 만든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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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개인적으로 지난주 열린 제43회 대종상 시상식 현장에서 인상적인 배우는 임하룡이었습니다. '웰컴 투 동막골'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정작 상을 받지는 못했죠. 대신 시상식 첫머리 여우조연상 시상 때 무대에 올랐습니다. '웰컴 투 동막골'에 함께 출연한 강혜정이 수상자로 호명됐지만 불참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만약 강혜정이 이 상을 받았다면 이렇게 전했을 것"이라는 가정법 겸 간접화법으로 수재민들, 그중에도 피해가 컸던 강원도 평창지역 수재민들을 위로했습니다. 평창이 '웰컴 투 동막골'의 주요 촬영현장이었던 점을 상기시키면서 말입니다.

듣는 순간 연륜이라고밖에 설명하기 힘든 넉넉한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습니다. 수상소감, 더구나 대리수상소감이니 사전에 준비된 원고가 있을 리 만무한 상황이었죠.

50대 초반인 그의 무대 이력 중 큰 부분은 알다시피 개그맨입니다. '쇼 비디오자키''유머 1번지'등에서 보여준 웃음은 지금 곱씹어도 참 재미있었죠. 당시에도 이런 인기에 기댄 코미디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지만, 본격적인 영화인생은 최근에야 제 궤도에 올랐습니다. 특히 '웰컴 투 동막골'과 '맨발의 기봉이'를 거치면서 그는 영화로는 '신인급'이면서도 알찬 연기자로 관객의 신뢰를 쌓아가는 중입니다.

이날 현장에서 지켜보자니, 시상식은 한 편의 영화와 닮은 점이 많았습니다. 관객에게 보여지는 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지만, 제작진의 준비기간은 그보다 훨씬 길죠. 또 참석 배우들의 옷매무새에도 여느 영화의 분장 못지 않은 공이 든 듯했습니다.

때로는 다큐멘터리의 성격도 가미됩니다. 신인여우상의 추자현과 남우주연상의 감우성이 소감을 이야기하다 감격을 억누르느라 숨을 고르는 모습, 이준익 감독이 감독상 수상자로 발표되는 순간 후보에 함께 올랐던 박찬욱 감독이 벌떡 일어나 악수를 건네며 축하하는 모습이 바로 그랬습니다. 리허설도, 각본도 없이 보는 이에게 크고 작은 감동을 불러오는 장면이지요.

대종상 시상식은 부문별 주연, 즉 수상자를 사전에 공개하지 않습니다. 참석자들은 본인이 주연인지, 조연인지 모르고 출연해야 하는 셈이지요. 으레 주연만 단골로 맡아온 스타들에게는 흡족하지 않은 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편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시상식 역시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조연의 고른 호연이 필수적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조연일지라도, 옷차림에서 말 한마디까지 최선을 다한 배우들이 결국 빛을 발하곤 하는 것 역시 한 편의 영화와 시상식이 마찬가지 아닐까요. 영광의 수상자들뿐 아니라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행사를 빛낸 이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픈 이유입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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