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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61배 면적이 잿더미…호주, 산불에 국가비상사태 선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30일 호주 빅토리아 지역을 덮친 산불. 이달 2일 현재 사망자는 최소 18명으로 집계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30일 호주 빅토리아 지역을 덮친 산불. 이달 2일 현재 사망자는 최소 18명으로 집계됐다. [로이터=연합뉴스]

따뜻한 남반구 호주로 겨울 휴가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면 취소하는 게 나을 듯하다. 호주 남동부를 덮친 화재 때문이다. 지난 11월부터 발생한 화재가 심상치 않다. 호주는 매년 겨울 산불과 씨름해왔지만, 올해는 유독 화재 진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섭씨 40도를 넘기는 고온과 강풍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산불 피해가 극심한 뉴사우스웨일스 주 정부는 2일(현지시간) 국가비상사태까지 선포했다. 호주 ABC 방송에 따르면 산불 피해가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4일을 앞두고 취해진 조치다.

 지난 11월부터 집계된 올해 산불 사태 사망자는 2일 오후 현재 최소 18명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실종자와 부상자도 속출하고 있어 인명피해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약 1300여채의 가옥 및 건물이 화재로 소실됐으며, 피해가 유독 심각한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만 400만 헥타르에 달하는 녹지가 잿더미로 변했다. 서울특별시 면적의 약 61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호주 산불이 진압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서울 면적의 61배에 달하는 녹지가 잿더미로 변했다. [EPA=연합뉴스]

호주 산불이 진압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서울 면적의 61배에 달하는 녹지가 잿더미로 변했다. [EPA=연합뉴스]

호주 당국도 관광객 대피령을 발령했다. 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지방소방청 관계자를 인용해 약 230㎞에 달하는 해안 지역을 관광객 금지 지역으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왜 유독 올해 산불 피해가 큰지를 두고 호주 내에선 기후변화 때문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BBC는 “호주에서 산불은 통과의례와 같은 존재였지만 이번 산불은 규모나 시기 면에서 더 심각하다”며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 기온과 건조한 대기 등이 산불 규모를 키웠다는 의견이 과학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호주 국민도 기후변화를 화재 확산의 주범으로 인식하고 있다.

호주 산불로 사망한 이들을 추모하는 행사. 2일 오후까지 최소 18명이 숨졌다. [로이터=연합뉴스]

호주 산불로 사망한 이들을 추모하는 행사. 2일 오후까지 최소 18명이 숨졌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호주 정부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스캇 모리슨 호주 총리는 지난달 31일 신년사를 발표하며 이번 화재가 역대 최악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호주는 과거부터 이와 비슷한 재해를 겪어왔다”고만 말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올해 피해가 유독 심각하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여기엔 호주의 경제산업구조 문제가 숨어있다. 호주는 현재 세계 제일의 석탄 수출국이다. 전 세계 석탄 수출의 3분의 1을 담당한다. 석탄 등 화석연료가 호주 산업의 주요 기반인 셈이다. 이에 따라 이번 화재와 연관해 석탄 산업을 감축하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지만, 모리슨 내각은 이를 거부하는 모양새다. 장관들 역시 “화재와 기후변화의 직접적 연관성은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호주 스캇 모리슨 총리가 2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산불과 기후변화는 상관이 없다는 게 총리 측의 입장이다. [EPA=연합뉴스]

호주 스캇 모리슨 총리가 2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산불과 기후변화는 상관이 없다는 게 총리 측의 입장이다. [EPA=연합뉴스]

그러나 야당은 화재가 잡히는 대로 정부를 겨냥하겠다는 움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리처드 디 나테일 호주 녹색당 대표는 의회 회기가 시작하는 대로 이번 산불에 대한 책임을 조사하기 위한 왕립조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화재가 호주 국토에 이어 리더십까지 위협하고 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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