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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쏙쏙 들어오는 설명, 스타강사는 무엇이 다를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39)

나이와 격에 걸맞지 않지만 일찍이 결혼 주례를 세 번 본적이 있었다. 몹시 겸연쩍어 한사코 고사했는데 결혼식 망치려면 맘대로 하라는 협박(?)을 이기지 못해 주례를 섰었다. 설문에 의하면 주례사는 5분 이내가 가장 좋다는 결과가 약 80% 이상을 차지한다는 설명과 함께 내 주례사는 항상 5분이내로 맺음을 했었다. 사실은 별로 할 얘기도, 할 주제도 아니어서이긴 했지만이 또한 하례나 신혼부부를 향한 배려가 아니었나 싶다.

어쨌거나 내가 주례사에서, 새로 가정을 꾸리고 출발을 하는 신혼부부에게 한 주문은 “배려”였었다. 처음은 사랑으로 모든 게 가능한 듯 보이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작 필요한 가치는 배려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결혼생활을 이어가며 부부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거기에 더 나아가 행복한 노후생활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자세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다.

결혼 주례를 볼 때 내가 주례사에서 신혼부부에게 주문하는 것은 '배려'이다. 처음은 사랑으로 모든 게 가능한 듯 보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정작 필요한 가치는 배려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결혼 주례를 볼 때 내가 주례사에서 신혼부부에게 주문하는 것은 '배려'이다. 처음은 사랑으로 모든 게 가능한 듯 보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정작 필요한 가치는 배려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배려는 결혼생활뿐만 아니라 어쩌면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 큰 가치를 지닌 태도이다. 그런데 배려도 끊임없는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내 경우에도 잦은 훈련을 통해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가 자주 사용하지 않으니 도로아미타불이 된 사례가 있다. 직장생활 시 회사가 시행하는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선정돼 1년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홀로 생활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미국인들의 몸에 밴 상대에 대한 배려를 눈여겨 보았고 감명받았다.

예를 들면 회전문을 통과할 때 함께 문에 든 어린이나 여성을 위해 속도를 조절하는 일이라든지, 부인이나 아동들을 위해 자동차문을 여닫아 준다든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 함께 한 동승자들을 위해 배려하는 것들이었다. 사소해 보였지만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생각하고 귀국 후에는 나도 한참을 그렇게 해 보았다. 반응? 당연히 좋았다. 그러나 한동안 그랬던 나의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자주 행하지 않으니 가끔 깜박깜박하는 경우가 생기더라.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다.

배려도 습관화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오래전 내 경험을 얘기해 보았다. 배려도 훈련이 돼야 한다는 점은 우체부 프레드의 저자 마크 센번도 강조한 바 있다. “베품은 기술이다. 그러므로 연습이 필요하다” 푸르메재단에서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 `도네이션369캠페인’이란 걸 전개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기부의 맷집 키우기다.

처음엔 소액의 기부를 그 다음해에는 조금 많이, 그 다음해에는 조금 더 많이 하는 식이다. 자주 맞다 보면 맷집이 세진다는 그 논리, 전적으로 공감한다. 기부나 봉사도 자주 해봐야 계속 이어갈 수 있다. 인생후반부를 살아가는 우리나라 남성들의 가장 큰 고민이 배우자나 가족에게조차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고, 그에 따라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 그건 오랫동안 상대를 위한 배려보다는 그저 경제적으로 기여를 했으면 됐지 하는 우리 남정네들의 사고가 낳은 결과임을 부인할 수 없다. 자신을 배려하지 않은 상대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풀 사람은 흔치 않다. 가족이라고 아니다 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알기 쉽고 재미있게 강의하는 강사들의 공통점은 바로 상대방의 수준에 맞춰 알기 쉽게 설명한다는 점이다. 영화와 역사를 접목해 말해주는 설민석 강사의 이야기는 정말 맛깔난다. [사진 MBC]

알기 쉽고 재미있게 강의하는 강사들의 공통점은 바로 상대방의 수준에 맞춰 알기 쉽게 설명한다는 점이다. 영화와 역사를 접목해 말해주는 설민석 강사의 이야기는 정말 맛깔난다. [사진 MBC]

어느 서평을 읽은 적이 있다. 최근 TV방송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설민석, 최태성, 강성태씨를 예로 들은 책의 서평인데 그들의 공통점이 있단다. 도대체 얼마나 친절하고, 상세하게, 잘 설명하기에 그토록 인기가 있나하고 설민석작가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몇 번 본적이 있는데 정말 맛깔나게 설명을 해 주더라.

함께 출연한 사람이 하던 말이 귀에 박힌다. “세상에 이렇게 이해하기 쉽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내용이 왜 옛날 공부할 때는 어려웠는지 몰라. 왜 옛날엔 그렇게 어렵게 설명했을까?” 왜 그러냐고? 학생의 입장이 아닌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설명했기 때문이다. 결국은 역지사지의 자세가 부족했던 이유다. 영화와 역사를 접목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강의하는 설민석씨와 공부의 신으로 불리는 강성태씨의 공통점은 바로 상대방의 수준에 맞춰 알기 쉽게 설명한다는 점이다.

바로 시청자에 대한 배려이다. 자신이 잘났다고 난해한 지식을 섞어가며 이야기해 봤자 남이 이해하지 못하면 한낱 도루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스타강사들은 잘 알기 때문에 그런 설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키워드가 바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임은 두말하면 잔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장자는 지락에서 노나라 군주와 바다새의 예를 들어 역지사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나라에 날아든 바다새를 보고 길조라고 여긴 노나라 군주는 성대한 연회를 차려 바다새에게 맛있는 고기와 술을 대접했다. 바다새는 삼일 만에 죽고 만다. 바다새에게 사람과 같이 대했으니 결국 죽게 만들었다는 우화를 통해 장자는 역지사지의 배려를 강조했다. 그럼 그런 배려는 어디서 올까? 두말하면 잔소리로 봉사에서 온다. 봉사를 하려면 일단은 역지사지의 생각으로 그들이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올레길의 어느 집앞에 놓인 귤박스. `시원하게 드세요'라는 글귀가 오아시스 같은 청량감을 준다. 누구나 작은 배려로도 천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사진 한익종]

올레길의 어느 집앞에 놓인 귤박스. `시원하게 드세요'라는 글귀가 오아시스 같은 청량감을 준다. 누구나 작은 배려로도 천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사진 한익종]

만일 내가 상대편의 입장이라면 나는 무엇을 원할까를 생각케 되는 봉사는 결국 사회생활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상대편에 대한 배려, 봉사에 대한 생각을 오랫동안 가다듬다 보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겐 몸이 저절로 반응한다. 나의 경우 바닷가를 거닐다 해녀들이 물질 마치고 나오면 자동적으로 그들 곁으로 가 무거운 망사리를 들어 주곤 한다.

해녀들은 어김없이 “고맙수다”라는 투박하지만 따뜻한 말과 함께 한 움큼의 뿔소라를 건넨다. 상대편에 대한 배려와 봉사는 어김없이 내게 그만한 몫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상대편에게 배려하고 먼저 손을 내미는 것에 인색해 왔다. 가난에서 겨우 벗어나 산업발전기의 나만 잘살면 된다는 경쟁심리가 낳은 결과이다. 시대가 변했다. 함께하는 사회가 곧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고, 그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배려와 봉사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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