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규환" 휴대폰엔 '공수처법 통과' 속보…분신 시도 상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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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후 분신을 시도한 집회 참가자 몸에 붙은 불을 끄는 당원과 경찰. [사진 우리공화당]

30일 오후 분신을 시도한 집회 참가자 몸에 붙은 불을 끄는 당원과 경찰. [사진 우리공화당]

"아이고 어떡해"
30일 오후 7시 9분 우리공화당 당원 안모(59)씨가 여의도 국회 앞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반대 시위'를 하다 몸에 불을 붙이는 시도를 했다. 안씨가 실려온 한강성심병원 정문 앞에는 불에 그을린 안씨의 옷가지와 소지품이 놓여있었다.

경찰 과학수사대가 나와 현장 사진을 찍었다. 안씨와 가까이 지내온 당원들은 병원에 도착해 옷가지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진짜네" "어쩐지 전화를 안 받더라니"라며 탄식했다.

병원 응급실 앞에서는 "안씨의 상태를 보여달라"는 당원들과 "가족이 오기 전에는 안 된다"고 말리는 병원 관계자의 실랑이로 한때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당원이 "우린 가족이나 마찬가지"라며 소리를 지르자 병원 관계자는 "어르신들이니까 여기 들어오시라고 한 거지, 원래는 안돼요. 응급실을 지키는 건 내 일"이라고 맞섰다. 안씨와 함께 공수처법 반대 집회만 160여회 해왔다는 당원들은 처음엔 안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로 절망했다고 한다.

30일 오후 분신 사건 당시 현장 상황. [사진 우리공화당]

30일 오후 분신 사건 당시 현장 상황. [사진 우리공화당]

한근형(29) 공화당 청년최고위원은 "앞쪽에서 대오를 이끌고 있었는데 뒤에서 더이상 사람들이 따라오지 않아 의아해 돌아봤더니 아비규환이었다"며 "처음에 '사망했다'는 말을 듣고 진짜인줄 알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고 말했다. 당원들은 안씨의 분신 징후는 전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공수처법 통과 소식과 함께 안씨는 별안간 자신의 상반신에 불을 붙였다. 안씨의 화상이 얼굴부터 심했던 이유다.

경찰들이 소화기로 불을 껐을 때 안씨는 입에 거품을 문 채 쓰러져 있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안씨의 핸드폰 화면에는 공수처법 통과 소식을 알리는 '속보'가 떠있었다.

집회 현장 책임을 맡은 송영진씨는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며 혀를 찼다. 송씨는 "3부 집회 때 국회 앞을 지나가는데 '누가 분신했다' 소리가 들려서 현장을 가보니 얼굴에 화상을 많이 입은 채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미리 알았으면 막았을 텐데"라고말했다. 안씨와 함께 당내 소모임을 해왔다는 한 60대 여성은 "평소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많이 걱정하던 사람이었다" "공수처법이 통과되면 정말 대한민국이 큰일 나는 거니까. 그 분에 못이긴 거 아니겠나"라고 안타까워했다.

오후 10시 20분쯤 병원 내에서 안씨 가족을 기다리던 당원들은 조원진 공화당 대표의 안내에 따라 해산했다. 조 대표는 "공수처 악법이 통과돼 정말 참담하다"며 "당원들은 보내고 지도부만 병원을 지키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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