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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진짜로 믿음’의 정치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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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호 35면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영어 표현 ‘true believer(트루 빌리버)’는 긍정적·부정적인 뜻을 동시에 담고 있다. 진실한 신자, 진짜로 믿는 사람, 참신자로 옮길 수 있다. 맹신자·광신자로 옮길 수도 있다. 그래서 당신은 ‘당신은 트루 빌리버다(You are a true believer)’라고 하면 이는 칭찬일 수도 욕일 수도 있다. 교회·성당·절에 다니는 신자들 뿐만 아니라 무신론자, 특정 정당이나 이념을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도 ‘트루 빌리버’의 범주에 속한다.

국격 해치는 신앙인 봐주면 #국가의 근본 토대 무너져 #진짜·가짜 신앙인 구분해야

‘true believer’는 부제가 ‘대중 운동의 본질에 대한 생각들(Thoughts on the Nature of Mass Movements)’인 1951년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저자는 에릭 호퍼(1902~1983)다. 영문판 기준으로 177페이지에 불과하지만, 영감의 보고(寶庫)다. 이 책으로 유명해진 에릭 호퍼는 레이건 대통령 시절인 1983년 미국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의 상훈인 ‘대통령 자유 메달’을 받았다.

책의 내용만큼이나 호퍼의 삶 자체가 흥미롭다. 지식인·철학자 반열에 오른 그의 생업은 65세까지 노동이었다. 호퍼는 부두 노동자, 품팔이 노동자였다. 노동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독서에 탐닉했다. 자신은 노동자라며 지식인으로 불리는 것을 거부했다.

오로지 독학과 독서로 철학자의 반열에 오른 호퍼는 서양 철학에서 맹자와 같은 존재인 플라톤도 무시했다. 플라톤이 반쪽 진실(half-truth)만 다뤘다고 공격했다. 1967년에는 존슨 대통령을 만나 지지율에는 신경 쓰지 말라고 조언했다.

에릭 호퍼는 손뼉 칠 때 세상으로부터 사라졌다. “누구나 기차에 승선할 수 있지만, 오로지 현명한 사람들만이 하차할 때를 안다”며 대학 강연, TV 출연, 인터뷰를 중단했다.

선데이 칼럼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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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호퍼의 주장은 사실 많은 독자를 분노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 대중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성공의 기회를 상실한 좌절한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루저(loser)다. 그들은 자존감이 낮다. 그들은 한 대중 운동에서 다른 대중 운동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사실 대의제 민주주의는, 대중 운동을 불신한다.

이 책에서 호퍼가 분석한 대중 운동은 파시즘·나치즘·공산주의다. 민주주의 체제하의 대중 운동을 분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도 호퍼의 책은 현실을 설명하는 데 동원된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에 상심한 민주당을 비롯한 리버럴(liberal) 진영은 이 책으로 ‘이해하기 힘든’ 트럼프 현상을 설명했다.

에릭 호퍼는 자유로운 민주 사회에서는 병리적인 대중 운동의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더욱 트럼프 현상은 미국 리버럴들에게 납득하기 힘든 미스터리다. 트루 빌리버의 정치학에서 진리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분위기’가 더 중요하다. 트럼프는 별로 그리스도교적인 삶을 살지 않았지만, 상당수 미국 크리스천들은 ‘주님이신 예수여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소서’라며 열광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했다.

트럼프는 2017년 한 대학 졸업식에서 “미국은 항상 꿈의 땅이었습니다. 미국은 ‘트루 빌리버’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부를 숭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神)을 숭배합니다”라고 말했다. 반대파는 이 말을 문제 삼았다.

호퍼의 책은 한국 정치의 오늘을 분석하는 데에도 끌어다 쓸 수 있다. 에릭 호퍼는 현 한국의 상황을 어떻게 볼까. 한국에는 두 개의 대중 운동이 공존 혹은 충돌하고 있다. 극소수 폭력을 부추기는 세력이 있지만, 아직은 레토릭에 불과하다. 전체적으로 보면,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두 대중 운동 흐름이 공존하고 있다. 긍정적으로 보면 두 세력의 충돌 속에 한국이 창조적인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시대나 진짜·가짜 신앙인을 구분한다. 물론 표현의 자유는 보장해 주어야 하지만, 국익에 손상을 주거나 국격을 해치는 신앙인을 방치하면 국가의 근본적인 토대가 무너질 수 있다. ‘신앙인’에게도 일반인과 동일한 기준 적용해야 한다.

2019년 대한민국. 추운 날씨에도 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양쪽 집회 참가자들은 모두 ‘트루 빌리버’다. 정치권이 해결하지 못한 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 민주적인 정당 정치가 작동한다면 불필요한 수고다. 정치권은 이를 속으로 은근히 즐기고 더하기 빼기 계산하고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에릭 호퍼에 따르면 대중 운동에 가담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삶과 변화를 갈망한다. 그래서 그들은 파시즘이나 공산주의 같은 전체주의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새로운 삶과 변화는 중요하다. 우리나라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서도 새로운 삶과 변화의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 세력이 이길 것이라고 본다.

대중 운동의 자양분은 화려한 과거다. 뇌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편파적인 좌파·우파 성향 지지자들의 뇌는 비슷하다. 그들은 과거의 영광에 집착한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구호가 먹히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비전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있다. 과연 어느 당파가 과거를 복원할 것인가.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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