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상에 치우친 인권위의 차별금지법 시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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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가인권위원회가 장애인이나 비정규직 근로자, 혼혈인 등 사회적 약자의 차별을 금지한 법률 시안을 내놨다. 성별.장애.인종.용모.학력.고용형태 등 스무 가지를 이유로 고용이나 교육 등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우리 사회에 차별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장애인이 취업 문턱을 넘기가 힘들고 학력 차별도 뿌리 깊다. 또 여성의 지위가 나아졌다 해도 여성 권한 척도가 70개국 중 63위에 지나지 않는다(2003년 유엔개발계획 조사). 선진국이 되려면 차별을 줄여 나갈 필요가 있다.

그렇더라도 인권위 시안이 너무 과격해 자칫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지 않을까 걱정된다.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3000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에다 때로는 손해액의 2~5배의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이런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영미(英美)법에나 맞지 대륙법인 우리나라 법체계에 맞지도 않고 전례도 없다.

또 차별하지 않았다고 기업 등 가해 측이 입증해야 하고, 손해배상액을 산정하기 곤란하면 가해 측이 얻은 재산상 이익을 손해로 추정하는 이상한 규정도 담고 있다.

스무 가지에 이르는 차별 사유가 선진국(6~14가지)에 비해 많고 차별 개념도 자의적이다. 수치심.모욕감.두려움 등 정신적 고통을 주는 일체의 행위, 즉 괴롭힘도 차별에 해당한다.

국회에 계류 중인 비정규직 법안도 근로자가 차별받았다고 판단되면 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이러다간 차별 여부를 두고 곳곳에서 다툼이 벌어질 것이고 기업 활동에 심대한 지장이 초래될 것이다. 그러면 기업이 고용을 기피할 것이고 그 피해가 어디로 가겠는가.

인권위는 권고안을 내는 데지 행정.사법기구가 아니다. 권고만으로 성에 안 차니 이제는 공정위처럼 시정명령도 발동하고 이행강제금도 물리는 행정기구가 되겠다는 것인가. 미국도 강제 조치는 법원에서 판단한다.

그동안 이상에 치우쳐 밀어붙였다가 실패한 사례를 무수히 봐 왔다. 이대로 가면 인권위 시안도 그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시안을 입법화할 때 실현 가능성을 무엇보다 먼저 따져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