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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콩강과 붉게 물든 하늘, 푸시언덕에서 본 환상적 일몰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남대의 예순에 떠나는 배낭여행(9)

고풍스럽게 나무로 지어진 숙소. [사진 조남대]

고풍스럽게 나무로 지어진 숙소. [사진 조남대]


9일 차, 라오스 루앙프라방 관광
라오스는 인도차이나반도 중앙 내륙에 있는 국가라 바다가 없다. 인구는 700만이지만 면적은 한반도의 1.1배다. 화폐단위는 ‘킵’이며, 1달러에 8500 킵 정도다. 인구의 95% 이상이 불교도로 1975년 공산혁명으로 사회주의국가가 되었다.
6시 30분에 잠이 깨여 반바지 차림의 잠옷 바람으로 밖에 나갔다. 날이 훤하다. 벌써 길거리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오간다. 스님들의 탁발행렬이 있을 것 같아 길거리로 나가 본 것이다. 관광객들이 카메라를 들고 오가고 있으며, 상인들도 많이 있다. 길가 조금 높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올라가 봤다. 한국 가이드가 관광객들을 모아놓고 설명하는 것이 보인다. 관광객 중 한 명인 아주머니에게 탁발 스님들의 행렬이 지나갔는지 물어보았더니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면서도 조금 전에 지나갔다고 한다. 왜 놀라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옷차림에다 어제 저녁 샤워한 후 잠을 잤더니만 머리카락이 위로 비쭉 솟은 몰골을 한 상태로 낯선 외국에서 한국어로 물어보니 깜짝 놀란 모양이다. 바로 앞에 보이는 사찰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다.

단체로 구입한 라오스 남방을 입고 숙소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일행.

단체로 구입한 라오스 남방을 입고 숙소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일행.

여행지에서 모닝커피 마시며 음악을 들으니 행복하다

8시경 일어나 우리 다섯 명은 모닝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겨본다. 가슴이 확 뚫리는 것 같다. 이런 것이 진정 여유로운 배낭여행이 아니던가. 광표 씨는 핸드폰에서 양현경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조용하고 은은한 음악을 튼다. 노래가 가슴을 파고든다. 수많은 여행을 다니면서 이렇게 여유롭고 한가한 기분을 가지게 된 것은 처음이다. 패키지여행이었다면 아침부터 정신없이 바쁘게 다닐 텐데 배낭여행이다 보니 여유롭게 음악을 즐기면서 여행을 다닐 수 있어 좋다.

커피를 한잔하고 중심가로 나가서 환전을 한 다음 빵을 구입한 후 쌀국수집으로 가서 빵과 함께 아침을 먹었다. 얼큰한 맛이다. 쌀국수가 15,000 킵이다. 1원이 6 킵 정도이니 6으로 나누면 우리 돈이다. 2,500원인 것이다. 저렴해서 기분이 좋다. 아침을 먹고 나자 10시 40분이다. 여유롭다. 이것이 힐링이며 진정한 여행이고 휴식이다. 오늘 일정은 아직 없다. 이제 아침을 먹었으니 생각해 봐야겠다. 아직도 조급한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여자들은 단체로 티셔츠를 구매하자고 한다. 좋을 것 같다. 길거리의 옷가게에서 라오스풍의 남자 티셔츠를 3개 샀다.
여행사에 들러 주변에 어떤 관광지가 있는지 확인해 본 후 빡우 동굴을 관광하기로 하고 강변으로 가보았다. 숙소 바로 옆이 메콩강이다. 강변으로 걸어가 보니 크고 작은 보트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다. 40만 킵 달라는 것을 35만 킵을 주기로 하고 배를 탔다. 5만8천 원 정도다. 우리 5명만 태우고 12시 30분 빡우 동굴로 출발했다.

메콩강변에 정박한 보트들.

메콩강변에 정박한 보트들.

우리가 타고 가는 보트.

우리가 타고 가는 보트.

메콩강에서 보트에 기대어 앉아 무념무상에 잠기다

보트 길이는 20m 정도이지만 넓이는 3m 정도로 기다란 배다. 가는데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메콩강 상류인데도 강폭은 500m나 되고 붉은 흙탕물이다. 보트는 강변을 따라 상류로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내며 쉬엄쉬엄 올라간다. 강바람을 맞으며 달리니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다. 서울은 영하 10℃라는데 여기는 25℃다. 반소매와 반바지를 입고 샌들을 신고 뱃전에 기대어 보트가 강물을 헤치고 가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에 잠긴다. 이렇게 행복해도 괜찮은가?. 그냥 좋다. 시원하다.

여기는 상류인데도 강폭이 500m 정도인데 하류는 얼마나 넓을까? 대단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온갖 찌꺼기를 모두 씻어서 흘러간다. 비록 흙탕물이지만 주변을 깨끗하게 씻어준다. 겉보기는 누런 황토물처럼 보이지만 바닥이 진흙이라 누런색이지 물 자체는 깨끗하다. 여유를 갖자. 조급함을 버리자. 그냥 좀 쉬었다 가자고 마음속으로 되뇐다.
보트를 운전하는 선장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오늘은 우리를 태우고 왔다 갔다 하면 더 이상 다른 손님을 태울 수 없을 텐데 5만8천 원 받아 기름값 제하면 얼마나 남을까 계산해 보니 그런 것이다. 화폐가치가 우리나라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별로 많이 남는 장사는 아닐 것 같다. 그래도 선장은 기쁜 마음으로 운전을 하고 우리가 물어보면 친절하게 이야기를 해준다.
한참을 달려 보아도 강변의 풍경은 거의 비슷하다. 강변에 조그만 땅이라도 있는 곳에는 각종 곡식이 심겨 있다. 삶이 팍팍한 모양이다. 좀 측은해 보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경쟁이 심한 우리보다 더 행복할지도 모를 일이다. 강폭이 좁은 곳에 교각 세우는 공사를 한다.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본다. 뱃전에 부딪히는 물소리만 들린다.

배 안에서 동요를 부르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강에는 온갖 배들이 오간다. 아주 조그만 배, 자동차를 싣고 다니는 배도 있고, 승객을 두 사람만 싣고 가는 배 등이 메콩강을 오간다. 슬리퍼를 신은 선장은 핸들을 잡고 강변을 따라 콧노래를 부르며 여유롭게 운전한다. 강물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천천히 흐른다. 뱃머리에 나가 앉아 있는데 뒤에 앉은 일행의 웃음소리가 호탕하게 들린다. 순희 씨의 애교스러운 이야기에 호호거리는 경희와 허허허 하는 광표 씨의 웃음소리로 보아 무척 재밌는 모양이다. 이야기 내용이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뱃전에 생각 없이 앉아 있는 내가 더 행복한 것 같다.

오늘 새벽에 소나기가 내리더니 강물에는 나뭇조각과 플라스틱 빈 병 등 부유물이 떠다닌다. 광표 씨와 순희 씨가 초등학생의 흉내를 내며 재밌게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동요를 부르기도 한다. 동심으로 돌아간 모양이다. 웃음이 절로 난다.
배는 뒤에서 무엇을 하든 말든 그냥 쉼 없이 달린다. 메콩강물도 그냥 조용히 흐른다. 순희 씨는 율동을 하며 동요를 부른다. 천진스럽다. 동요는 끝없이 이어진다. 과수원길, 오빠 생각, 꽃밭에서 등 동요를 부르니 어릴 적 옛 생각이 떠오른다.
메콩강 하면 베트남전쟁이 생각난다. 월남과 월맹 즉 베트콩과 전쟁을 할 때 맹호부대. 청룡부대 등을 파견하여 밀림에서 전쟁을 하면서 우리의 형님들이 수없이 죽어 갔던 이야기를 들어 왔는데 그 현장은 아니지만, 주변을 와보니 격세지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것이다. 벌써 40∼50년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 옛날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던 적이었는데 이제는 현대자동차가 하노이 거리에 제일 많이 달리고 있으며, 삼성광고판과 우리의 공장이 즐비하다.

중간에 내린 시골마을의 옷과 민속품을 파는 가게들.

중간에 내린 시골마을의 옷과 민속품을 파는 가게들.

메콩강변 시골마을에서 마시는 라오맥주에 취기가 돌다

한 시간쯤 쉼 없이 달리던 배가 조그만 선착장에 뱃머리를 댄다. 마을로 올라가니 직접 손으로 짠 스카프와 옷을 비롯하여 각종 잡화 등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강변에 있는 조그만 시골 마을이다. 물건을 팔기 위해 관광객들을 들리게 하는 모양이다. 허름한 사원 등을 구경하고 구멍가게에 들러 목이 말라 라오 맥주를 한잔 마시면서 좀 쉬었더니 시원하면서도 취기가 돈다. 30분 정도 마을을 둘러보고 다시 배를 타고 30분 정도 더 달려 동굴에 도착했다.

빡우동굴은 루앙프라방에서 25km 떨어져 있다. 석회암 절벽 아래쪽의 ‘탐 띵’, 위족의 ‘탐 품’이라는 2개의 동굴이 있는데, 동굴에는 수천 개의 조그마한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아래에 있는 땀 띵은 배에서 내려 가파른 계단을 조금 올라가면 들어갈 수 있다.
땀 띵 왼쪽으로 난 계단을 따라 한참 올라가면 탐 폼 동굴이 있는데 이 동굴은 더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절벽에 뚫려있는 자연동굴에 조그마한 불상을 많이 모셔둔 것으로, 우리나라의 절에 큰 부처님을 모셔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우리 정서하고 차이가 크다. 그냥 자연동굴에 조그만 불상을 많이 안치해 둔 것이다.

빡우동굴에 모셔진 부처님 앞에서 절을 하는 일행.

빡우동굴에 모셔진 부처님 앞에서 절을 하는 일행.

빡우 동굴 부처님께 무릎 꿇고 무사 여행을 빌다

광표와 순희씨는 부처님 앞에서 정성스럽게 절을 한다. 무엇을 기원했을까? 아마 우리 일행이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귀국할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계단을 한참 오르니 땀이 나면서 숨이 찬다. 중간에 숨을 좀 고르고 또 오른다. 더 나이 들면 관광 다니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청소도 안 되어있는 등 별로 감흥이 없다. 멀리 온 것에 비해 볼 것이 별로 없다.

동굴로 오가는 길에는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아이들이 새와 과자, 묵주 등을 가지고 다니며 관광객들을 상대로 사 달라고 사정을 한다. 조그마한 새는 왜 파는지 또 누가 사는지 모르겠다. 관광객들이 잡혀있는 새를 보고 불상해서 구입한 후 방생하기 위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들은 물건을 팔기 위해 두 계단씩 뛰어다니며 왔다 갔다 한다. 불쌍한 마음이 들면서도 선뜻 사 주지를 못 한다. 내가 너무 소심한 것인가. 한 아이 것을 사 주면 다른 아이도 달려와 자기 것도 사 달라고 한다. 별 감흥 없이 두 동굴을 둘러본 다음 배로 돌아왔다. 되돌아올 때는 강물의 흐름과 같은 방향으로 오기 때문에 30분 정도 단축되어 1시간 정도 걸렸다.

푸시언덕 정상에서 바라본 루앙프라방 시내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

푸시언덕 정상에서 바라본 루앙프라방 시내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

푸시언덕에서 일몰을 감상하기 위해 운집한 여행객.

푸시언덕에서 일몰을 감상하기 위해 운집한 여행객.

숲 속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평화로운 도시

부두에 도착하자마자 푸 씨 언덕에서 보는 일몰이 멋있다고 하여 계단을 급히 올라갔다. 시내 중심에 있는 해발 100m 정도의 언덕이다. 작은 언덕이지만 높은 건물이 없는 루앙프라방에서는 눈에 띄는 곳이다. 중간쯤 올라가다 보니 입장료를 내야 더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일몰 시각이 임박하여 입장료를 내고 급히 올라가니 수많은 관광객들이 좋은 자리는 벌써 다 차지한 채 일몰 광경을 지켜보느라 북새통이다. 관광객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메콩강 건너편 산자락 너머의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떨어지는 멋진 일몰 광경을 감상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일몰이지만 왜 여기서 보는 일몰은 더 멋있을까?.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니 그런 모양이다.

일몰 사진을 여러 장 찍은 다음 탑 뒤로 돌아가니 금빛의 ‘탓 참씨'사원이 자리 잡고 있고, 빙 둘러가며 보이는 루앙프라방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산 아래 숲속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도시 전체가 너무나 평화롭게 보인다. 단독주택의 집들은 모두 붉은 지붕으로 되어있다. 도시 풍경이 환상적이다. 높은 성에서 내려다보았던 헝가리 등 동유럽 같은 분위기다. 메콩강 너머로 떨어지는 붉은 석양의 모습보다 더 멋지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뒤로하고 푸시 언덕을 내려왔다.

루앙프라방 여행자 거리의 먹자 골목.

루앙프라방 여행자 거리의 먹자 골목.

루앙프라방 여행자 거리에 있는 먹자 골목의 각종 음식.

루앙프라방 여행자 거리에 있는 먹자 골목의 각종 음식.

여행자 거리는 밤이 되면 불야성을 이룬다

푸씨 언덕을 오르내리느라 땀을 흘려 샤워를 하고 숙소 바로 앞 도로변 포장마차에서 샤부샤부로 저녁 식사를 하였는데 매콤하면서 중독성이 있는 등 너무 맛있다. 매운맛으로 인해 땀을 흘리며 저녁을 먹었다.

밤이 되면 숙소 바로 앞 도로에는 차량 통행을 금지한 채 야시장이 열린다. 거의 1km의 거리에 수백 개의 옷과 스카프, 그림, 각종 장신구와 그릇, 민예품 등의 가게와 함께 먹자골목도 있다. 먹자골목은 관광객으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 한국 관광객도 많이 눈에 띈다. 저녁 식사 후 시원한 밤공기를 쐬며 거리의 모습을 구경했다. 서두를 것 없이 느긋하게 돌아다니기만 해도 힐링이 된다.
각종 열대 과일을 구입하여 숙소에 와서 먹은 다음 그냥 잠자는 것이 아쉬워 뚝뚝이를 타고 한 시간 정도 시내 구경을 다녔다. 여기 뚝뚝이는 삼륜차를 개조한 교통수단으로 크기에 따라 6-10명 정도 탈 수 있다. 강변을 따라 돌아보니 시내가 상당히 넓다. 우리 숙소 주변에만 카페 등이 있는 줄 알았는데 강변을 따라 호텔과 카페와 식당이 즐비하다. 대부분이 외국 관광객들이다. 시내를 둘러보고 난 다음 또 한 시간 정도 발 마사지를 받은 후 잠자리에 들었다. 마사지 비용이 1만 원도 안 될 정도로 저렴하니 자주 이용하게 된다.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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