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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과 조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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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가영
이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가영 사회1팀장

이가영 사회1팀장

‘조국’ 두 글자를 빼고 2019년 한 해를 정리할 수 있을까. 국민은 올 하반기 내내 문재인 정권의 초대 청와대 민정수석에서 법무부 장관에 오른 그가 추락하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엔 본격적인 수사의 대상이 됐고, 이제는 구속의 갈림길에 섰다.

조국 파문은 그것이 남긴 흔적들로 인해 2019년을 더욱 강렬한 기억으로 남길 것 같다. 무엇보다 86세대의 민낯이 드러났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86세대가 사회 기득권층이 되고 대물림을 통해 이를 유지하려 했다는 것을 조 전 장관이 대표해 보여줬다. 이후 86세대 일부 정치인들의 총선 불출마 선언이 나왔지만 86세대, 나아가 진보진영 전체에 기대를 보냈던 이들의 실망이 쉬 가시진 않을 것 같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감찰 무마 의혹과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도 조 전 장관 파문과 무관치 않다. 모두 조 전 장관이 민정수석이던 시절에 벌어진 일들이다. 그가 민정수석 업무를 능숙히 처리하고 무리 없이 장관직을 수행했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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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한 것은 여권에 타격을 입힌 것처럼 보이는 조 전 장관 파문으로 인해 여권이 원하는 정책 몇 가지를 수월하게 밀어붙였다는 거다. 그 첫째가 검찰개혁이다. 조 전 장관 일가 수사를 겪은 여권은 피의사실 공표 금지 등을 골자로 한 법무부 훈령을 밀어붙였다. 상시로 운영되던 검찰청의 수사 브리핑은 모두 금지됐고, 기자와 검사는 접촉할 수 없는 상대가 돼 버렸다.

교육제도의 변화도 그중 하나다. 문 대통령은 조 전 장관 딸의 대학, 의전원 입학 특혜 의혹이 일자 뜬금없이 대입 제도를 정시 위주로 바꾸도록 지시했다.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었지만 제도 손질은 몇 개월 만에 이뤄졌다. 자사고 폐지도 결정됐다.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는 혼란과 분노를 표출했고, 그토록 잡겠다던 강남 집값은 다시 요동쳤다. 최근에 발표한 사학 개혁안도 조 전 장관과 무관하지 않다. 그의 아버지가 인수한 사학재단에 어머니, 동생, 부인이 모두 이사나 핵심 인력으로 참여했다. 표창장 위조 의혹을 공개한 동양대도 대상 중 하나다.

영장심사를 이틀 남긴 크리스마스이브에 조 전 장관은 구치소에 갇힌 부인을 면회했다. 그에게 2019년은 결코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서 비롯한 우리 사회의 변화들로 인해 국민에게도 2019년은 잊기 어려운 기억으로 남게 됐다. 2020년은 소소하고 행복했던 시절로 각인되길 바라는 게 너무 큰 희망이 아니길 기대해 본다.

이가영 사회1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