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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 마카오 내세워 '반항아' 홍콩 훈계하는 시진핑, 역효과 낼 수도

중앙일보

입력

중국이 20일로 반환 20주년을 맞는 마카오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나라 두 체제’) 실천의 모범 사례란 것이다. 이면엔 '반항아' 홍콩에 대한 훈계가 짙게 깔려있다.

400여 년 포르투갈 지배 탈피한 마카오 #반환 20년 만에 소득 세계 상위권 올라 #중국은 ‘일국양제’ 실천 성공 사례 선전 #‘금융 허브’ 선물 안길 것이란 전망도 #홍콩, “마카오에 금융인력 있나” 볼멘소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추이스안 마카오특구 행정장관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추이스안 마카오특구 행정장관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18일 마카오를 찾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도착 직후 일성으로 “마카오가 반환 이후 20년간 거둔 성과가 자랑스럽다”며 "이는 마카오가 철저하게 일국양제 방침을 관철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마카오는 1999년 12월 20일 무려 400년이 넘는 포르투갈의 지배에서 벗어나 중국의 품에 안긴 뒤 줄곧 중국 특수를 누렸다. 담수의 90%, 전력의 60%, 양식의 80%를 중국으로부터 공급받아서 그렇다는 게 아니다.

중국 정부가 오직 마카오에만 카지노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반환되던 해인 99년 국내총생산(GDP)이 61억 달러(약 7조원)였으나 지난해엔 550억 달러로 9배나 커졌다. 1인당 GDP도 99년 1만3844달러에서 지난해 8만6355달러로 치솟았다. 세계 4위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마카오의 지난 20년 발전이 철저한 일국양제 실천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마카오의 지난 20년 발전이 철저한 일국양제 실천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중국 신화망 캡처]

홍콩인의 절반도 안 되던 소득이 홍콩을 훨씬 더 웃도는 상황으로 변한 건 마카오의 카지노로 향하는 관광객 발길 때문이다. 지난해 마카오를 찾은 관광객은 3580만 명. 이중 중국 대륙에서 온 관광객이 70%인 2520만 명을 기록했다.

중국 부자들은 카지노에서 1500만 원짜리 칩 수십 개를 바꿔가며 배팅한다. 그 결과 카지노 산업에서 발생하는 세수가 전체의 80%다. 카지노 관련 종사자도 전체 고용의 21%에 이른다. 실업률이 완전고용 수준인 1.8%에 불과한 이유다.

이처럼 경제의 생명줄 카지노 수입의 절대 부분을 중국 관광객에 의존하다 보니 마카오에선 중국에 항명하는 걸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됐다. 국가보안법 제정의 경우 홍콩에선 2003년 50만 반대 시위대에 밀려 무산됐지만, 마카오는 2009년 군말 없이 통과시켰다.

홍콩 거리를 79일이나 장악한 2014년의 ‘우산 혁명’이나 지난 6월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송환법 반대 시위’도 마카오에선 찾아볼 수 없다. 홍콩이 '반항아'라면 마카오는 친중 노선을 충실하게 걷는 '모범생'인 것이다.
시 주석 입장에선 중국이 추진하는 일국양제의 모범 사례로 마카오를 반길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시주석이 마카오에 ‘금융 허브’ 선물을 안길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다. 홍콩엔 경고를, 마카오엔 보상을 주기 위한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가 18일 마카오에 도착해 공항에 나온 어린이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가 18일 마카오에 도착해 공항에 나온 어린이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지난 2월 발표된 대만구(大灣區, Great Bay Area) 계획은 마카오 발전에 또 다른 기념비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계획은 중국 당국이 광저우(廣州)와 선전(深圳) 등 광둥(廣東)성의 9개 도시와 마카오, 홍콩을 하나로 묶어 혁신 경제권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시 주석은 마카오에 대한 중시 입장을 보여주기 위해 이례적으로 긴 2박 3일 일정으로 마카오를 방문했다. 19일엔 마카오 각계 인사를 만나고 저녁엔 환영 만찬과 공연에 참석한다.20일에는 마카오 반환 20주년 경축 대회와 제5기 마카오특별행정구 행정장관의 취임식에 참석해 마카오 특구의 신임 지도부를 접견하고 격려한 뒤 베이징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마카오 특구정부는 22일 밤 16만 발을 쏘는 대형 불꽃놀이를 기획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웃집 ‘엄친아’를 내세워 자식 꾸짖는 게 역효과만 낳는다는 건 세상 이치다. 마카오를 금융 허브로 육성한다는 소문이 돌자 홍콩에선 바로 “고급 금융인력은 물론 제도적인 인프라가 거의 없는 마카오에서 그게 가능한지 의문”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마카오의 카지노 딜러가 갑자기 금융 귀재로 변신할 수는 없다”는 조롱도 있다. 사실 마카오 인구는 65만에 불과해 740만의 홍콩과는 인적 인프라에서 큰 차이가 난다. 중국의 지나친 마카오 띄우기는 자칫 홍콩과 마카오 간 불협화음만 증폭시킬 우려가 크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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