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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돌도 안 지난 아들 두고···35세 아빠도 블랙아이스에 당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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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20년 베테랑 화물차 운전기사 김모(59)씨의 아내는 14일 오후 4시쯤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딸에게서 온 전화였다. 반갑게 전화를 받았지만, 딸이 전한 소식은 그렇지 못했다. 딸은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나 숨진 남성이 아버지인 것 같으니 병원으로 오라’는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놀란 아내는 그 길로 경기 용인에서 경북 상주로 달려갔다.

20년 베테랑 화물차 운전 기사 봉변 #“구두 5~6년씩 신던 애…일만 하다 가” #전투복차림 군인도…충격에 할말 잃어 #화재에 훼손 심해 정작 가족 보진 못해

김씨는 이날 오전 4시 43분쯤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상주~영천고속도로 영천방향 상행선(상주 기점 26.4㎞)에서 차량 28대가 잇따라 추돌하는 사고에 휘말려 숨졌다. 수도권에서 화물을 전국으로 운반하는 일을 하는 김씨는 이날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20년간 운전 일을 하면서 사고 한 번 난 적 없던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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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시 성모병원에서 만난 김씨의 아내는 “성실하고 자상한 사람이었다”며 “나라에서 연말에 땅이나 파헤칠 게 아니라 이런 것(도로 위 결빙현상)이나 좀 해결해 주지…. 자주 일어나는 일이잖아요”라고 울먹였다.

경북 상주시 성모병원 장례식장. 신혜연기자

경북 상주시 성모병원 장례식장. 신혜연기자

사고 다음날인 15일 오전 11시엔 김씨의 일가 친척들도 병원을 찾았다. 김씨의 형(71)은 “동생은 평소 가족밖에 모르고 살던 애다. 일만 하다 가서 더 안타깝다. 구두를 5~6년씩 신던 애였다”고 그를 떠올렸다.

이 사고로 발생한 다른 사망자 서모(35)씨도 김씨와 같은 병원으로 후송됐다. 결혼한 지 3년 정도 된 신혼인 서씨는 아직 돌이 채 지나지 않은 아들이 있다. 14일 오후 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한 서씨의 아버지는 하염없이 “우리 아들은, 우리 아들은…”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뒤이어 도착한 서씨의 아내도 얼굴이 눈물범벅이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14일 오전 경북 군위군 상주~영천고속도로에서 도로 결빙으로 인한 2건의 다중추돌 사고와 차량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 경북소방본부]

14일 오전 경북 군위군 상주~영천고속도로에서 도로 결빙으로 인한 2건의 다중추돌 사고와 차량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 경북소방본부]

상주 성모병원에서 약 1㎞ 떨어져 있는 상주 적십자병원에도 사망자 1명이 안치됐다. 숨진 김모(59)씨는 첫 번째 연쇄 추돌사고가 난 지 5분 뒤인 4시 48분쯤 군위군 소보면 산법리 상주~영천고속도로 하행선(상주 기점 30.7㎞)에서 난 두 번째 사고의 희생자다. 사고가 난 50여m 높이 산호교 아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자 4명이 안치된 경북 구미시 차병원 장례식장에는 14일 오후 6시쯤 공군 전투복을 입은 군인 1명이 앉아 있었다. 앳된 얼굴의 군인은 상병 계급을 달고 있었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사고로 숨진 한 분의 아들”이라고 귀띔했다. 아버지 소식을 듣고 급하기 휴가를 써 나왔다고 했다.

경북 구미시 차병원 장례식장 입구. 김정석기자

경북 구미시 차병원 장례식장 입구. 김정석기자

충격을 받아 말을 잃은 아들은 기자의 질문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친척 한 명이 “네가 힘을 내야 한다”며 위로했다.

제각기 다른 지역에서 상주와 구미로 온 이들은 먼 길을 달려왔지만 정작 가족의 시신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불에 탄 시신이 워낙 심하게 훼손돼 있어서다. 상주 성모병원 장례식장 관계자는 “지문 감식조차 어려울 정도로 훼손이 심하다. 되도록 보지 않고 화장하는 게 좋다”고 전했다.

유가족들은 사망자의 신원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한 DNA 대조 검사를 했다. 경찰이 DNA 채취를 위해 면봉을 입 안에 집어넣는 동안에도 유가족들의 얼굴은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상주·구미=신혜연·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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