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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통화날, 北 중대시험 도발···트럼프와 다른 '文의 침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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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이번통화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으로 7일 오전 11시부터 30분 동안 진행됐다. [사진 청와대]

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이번통화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으로 7일 오전 11시부터 30분 동안 진행됐다. [사진 청와대]

한ㆍ미 정상 간의 전화 통화(7일 오전) 뒤 북한의 ‘중대한 시험’(7일 오후)과 그에 대한 발표(8일 오전), 이어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한이 적대적으로 행동한다면 나는 놀랄 것”이라는 발언. 주말 동안 한반도를 둘러싼 남북과 미국의 긴박한 움직임이다. 한ㆍ미가 호흡을 다듬는 동안 북한은 보란 듯이 서해 위성발사장, 일명 동창리 발사장을 건드리고 나섰다.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지 않고 공식 대응도 삼가면서 향후 대책을 고심중이다.

◇한ㆍ미 통화 후 북한의 도발, 양 정상은 사전에 알았나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오전 11시부터 트럼프 대통령과 30분간 통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이나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고, 오로지 북한 문제만 논의했다고 한다. 통역을 고려해도 한 주제로 30분간 통화했다는 것은 그만큼 양 정상 간에 오간 말이 많다는 의미다.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은 “양 정상은 최근 한반도 상황이 엄중하다는 데 인식을 공유하고, 북ㆍ미 간 비핵화 협상의 조기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 대화 모멘텀이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라고 말했다.

양 정상의 통화 후 북한은 보란 듯이 그날 오후 ‘중대한 시험’을 했다. 지난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비핵화 진전에 따라 폐쇄하기로 했던 동창리 발사장에서 도발을 감행해 한·미 정상의 통화에 찬물을 끼얹은 모양새다.

민간위성업체 '플래닛 랩스'가 5일 촬영한 위성사진에서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앞에 대형 선적컨테이너가 놓여 있다. [CNN 캡처]

민간위성업체 '플래닛 랩스'가 5일 촬영한 위성사진에서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앞에 대형 선적컨테이너가 놓여 있다. [CNN 캡처]

다만 한·미 정상이 관련 첩보를 미리 공유했을 가능성은 있다. 최근 동창리 일대 차량과 장비의 움직임이 늘어나더니, 5일에는 대형 컨테이너가 상업 위상에 포착됐다. 미국은 이에 맞춰 RC-135(코브라볼) 2대를 한반도 상공에 띄웠고, 한국군도 동창리에서 엔진 시험이나 장거리 로켓 발사로 이어질 수 있는 징후를 감지했다.

한·미 정상이 관련 내용을 공유한 상태에서 전화통화를 했다면, 이는 그만큼 북한의 무력도발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방증이다. 북ㆍ미는 이미 “군사력을 사용해야 한다면 사용할 것”(3일, 트럼프 대통령)→“무력 사용은 미국만의 특권 아니다”(4일, 북한 박정천 인민군 총참모장)며 갈등을 키운 상태다.

◇문 대통령, 북한 달랠 카드 마땅찮아 고심

7일 한·미 정상 통화에서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통화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대변인)고 한 것은 문 대통령에게 역할이 주어졌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정부 당국자는 “최근 북한과 미국의 연락이 두절된 것으로 안다”며 “북한과 관련한 한국의 정보와 역할에 기대를 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ㆍ미 대화 국면에서 옆으로 빠져있던 문 대통령이 다시 소위 ‘운전자론’에 따라 역할을 확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지난해 북한과 미국은 한국의 중재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1차 북ㆍ미 정상회담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2월 평창 겨울 올림픽에 참석한 김영남 당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과 회동을 시도했지만 실패하자, 김정은 위원장이 3월 초 방북한 문 대통령의 특사단에 북ㆍ미 정상회담 뜻을 밝혔고 특사단이 미국으로 건너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를 전달해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이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다르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한국은 북한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지난 6월 27일 권정근 당시 외무성 미국 국장은 “미국에 연락할 일이 있으면 가동되고 있는 연락통로를 이용하면 되는 것이고 협상을 해도 미국과 직접 마주 앉아 하게 되는 것”이라며 “남조선 당국(한국)은 제집의 일이나 똑바로 챙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한국이 중재자 역할을 다시 맡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이 많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월 23일 금강산을 찾아 ”남측 시설물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한 데 이어, 한국 당국과의 실무회담을 거절하는 등 아예 얼굴도 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9월 말에는 한국과의 접촉 금지령 수위를 더욱 높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국이 북한을 달랠 수 있는 카드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전직 정보 당국자는 “북한이 인공위성을 비롯해 군사적 도발을 준비하는 건 미국과 맞짱을 뜨겠다는 얘기”라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역할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잘못 개입했다간 책임만 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문 대통령의 주가를 띄웠던 ‘운전자론’이 이제는 문 대통령에게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용수ㆍ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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