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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준호의 과학&미래

차이나 디스토피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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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최준호 과학&미래팀장

최준호 과학&미래팀장

중국의 오늘에서 디스토피아(dystopia)의 미래가 보인다. 과학기술은 첨단으로 발전하지만, 그 속에 사는 인류는 전혀 행복하지 않은 시대 말이다. 그간은 공상과학(SF) 영화나 소설로만 접했던, 그래서 지나친 억측이라 생각했던 세상이 현실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 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이날부터 중국 통신사들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새로운 전화번호를 개통할 때 신원 확인을 위해 사용자의 얼굴을 스캔하도록 의무화하는 규정이 발효됐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은 이미 최첨단 인공지능(AI) 기술과 폐쇄회로(CC)TV 카메라를 이용해 길거리를 다니는 시민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가공할 기술을 확보한 나라다.

중국의 생명공학도 그 ‘발전’ 속도가 어지러울 정도다. 지난해 11월 중국 남방과학기술대의 허젠쿠이(賀建奎) 교수가 인간배아 유전자 편집을 통해 인류 최초의 디자이너 베이비들을 탄생시켜 전 세계에 파문을 일으킨 바가 있다. 이후로 중국 정부가 허 교수를 처벌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가 어떻게 됐는지, 아기들이 어디서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세계 과학계는 중국이 개인의 인권과 생명윤리에 둔감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연구하고, 그래서 세계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마도 지금의 ‘발전’ 속도가 이어진다면, 중국은 머잖아 세계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과 첨단 생명공학 기술을 갖춘 국가가 될 것이다. 더불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와 같은 감시사회, SF영화 ‘가타카’와 같은 세상이 중국에서 가장 먼저 실현될 수도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사족(蛇足) 같은 우려. 중국을 반면교사 삼아 우리는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싶은 분이 계신다면, 너무 염려 마시라. 중국은 말할 필요도 없이, 한국은 글로벌 평균보다 훨씬 엄격하고 강력한 규제로 인공지능·빅데이터·생명공학의 연구를 꽁꽁 묶어놓고 있다. 한국 국회는 그렇게 영민하지 못하다.

최준호 과학&미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