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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출산율 0.88명의 충격, 무관심이 낳은 재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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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호 30면

7~9월 합계 출산율이 0.88명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동기(0.96명)보다 더 떨어졌다. 서울은 0.69명, 부산은 0.78명이다. 동서고금을 둘러봐도 이런 출산율은 없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홍콩·마카오 등지에서 0점대 출산율이 있었을 뿐이다. 이대로 가면 올해 출산율은 0.8명대로, 출생 아동은 20만 명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내년 이후도 더 떨어질 게 거의 확실하다. 출산의 선행지표인 혼인 건수가 2017년 6.1%, 지난해 2.6%, 올 1~9월 6.8% 줄었다. 끝이 어딘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3분기 서울 0.69명, 부산 0.78명 충격적 #정부·국회 손놓고, 국민들은 체념 분위기 #문 대통령, 이제라도 출산정책 직접 챙겨야

통계가 나올 때마다 ‘역대 최저’ ‘통계 생산 이후 최저’라는 수식어가 붙어서 그런지 0.69명(서울)이 충격적으로 와 닿지도 않는다. 이 정도면 인구 절멸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 사회가 초저출산, 인구 절벽에 이미 중독된 듯하다. 28일 기준 추계인구는 5170만 9098명이다. 당분간 오르다 2028년 5194만명을 정점으로 감소한다. 2067년엔 3900만 명으로 떨어진다. 이미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학교가 문 닫고, 빈집이 늘고, 지방소멸이 보통명사가 됐다. 북핵만큼 두려운 게 인구절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가 안보의 가장 큰 위협요소가 됐다.

우리 사회가 저출산과 씨름을 시작한 건 2006년이다. 그동안 매년 100가지의 대책을 시행하고 연평균 20조원가량을 쓰지만 결과는 거꾸로 간다. 일각에서 “백약이 무효”라며 자포자기하는 듯하다. 그런데도 저출산 대책의 중심 타워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두 달째 공석이다. 연말까지 채워질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올 들어 위원회 전체 회의가 열린 적도 없다.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2017년 말 청와대에서 위원들과 간담회를 한 이후 회의를 주재한 적이 없다. 현재 이슈에 매달려 나라의 미래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현 정부는 지난해 박근혜 정부의 3차 저출산 고령사회대책을 뒤흔들고 재구조화를 했다. 출산 장려라는 말을 없애면서 출산율 목표(1.5명)를 폐기했다. 워라밸(일과 개인 생활의 균형)을 강조하면서 삶의 질이 올라가면 출산율이 자연스레 따라 오를 것이라고 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방향은 맞을지 모른다.

다만 급락하는 출산율 앞에서 너무 한가하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올 들어 범정부 인구TF에서 몇 가지 중기 대책을 내놓긴 했다. 하지만 당장 효과를 낼 만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데다 종합대책으로는 미흡하다.

국회는 어떤가. 인구 절멸 위기는 안중에도 없다. 내년 총선에만 골몰한다. 저출산특위를 만들어 몇 번 회의를 하더니 그걸로 끝이다. 여당이 책임지는 모습도, 야당이 대안을 제시하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작금의 ‘저출산 체념 증후군’에 비춰볼 때 0.69명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젊은이들이 너무 기가 죽었다. 일자리가 없으니 학교 문을 나서기 겁난다. 그런 마당에 결혼과 출산은 ‘나의 일’이 아니다. 결혼을 해도 육아·교육 등의 장벽에 좌절한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스웨덴·프랑스 등 출산 선진국의 좋은 정책은 다 베껴왔다.

하지만 하나하나 따지면 성기고 숭숭 구멍이 뚫려 있다. 내실을 기해야 한다. 눈치 안 보고 남성 육아 휴직 가기, 중소기업 근로자 지원, 어린이집 교사 질 향상, 초등 저학년 돌봄 공백 지원, 사교육비 감소 등에 획기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지방 청년이 수도권이나 대도시로 이탈하지 않게 일자리 확대 등의 지역균형 발전에 집중해야 한다. 일자리를 만들어낼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게 규제를 풀어야 한다. 경제가 나아지면 출산율 하락 속도가 줄거나 바닥을 찍을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이제 던질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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