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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니 '전기차' 원했지만···현대차 보류, 그뒤엔 日 특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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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전기차 아이오닉EV. [사진 현대차]

현대차 전기차 아이오닉EV. [사진 현대차]

지난 12일 50명 규모의 산업통상자원부, 현대자동차 간부급 등 한국 민관 인사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포럼장에 모였다. 한쪽 편에는 인도네시아 산업부 고위 관계자도 함께했다.

"일본차업계가 하이브리드에 유리하게 조세방향 입김"

포럼장 한쪽에는 현대차 아이오닉EV 차량이 전시되어 있었다. 현대차 관계자가 아이오닉EV의 충전방식을 인도네시아 인사에게 직접 보여주면서 설명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인사는 "현대차가 인도네시아 현지 전력공급 업체와 전기충전인프라를 함께 준비했다고 들었고, 국내 배터리 공급업체도 함께 포럼에 참석한 것으로 안다"며 "현대차가 현지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기 위해 오랜 준비를 한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26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열린 현대차 인도네시아 공장 설립 투자협약식 전에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코나EV 보닛에 기념 서명을 한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현대차]

26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열린 현대차 인도네시아 공장 설립 투자협약식 전에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코나EV 보닛에 기념 서명을 한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현대차]

26일 현대차가 인도네시아 정부와 맺은 15억5000만 달러(1조8200억원) 규모의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 설립 투자협정에는 전기차에 대해선 '검토한다'는 내용만 담겨있다.

현대차가 최종적으로 이런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전기차 생산에 대해 충분한 투자유인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10월 개정된 인도네시아 차량별 특별소비세 부과 조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10월 개정된 인도네시아 차량별 특별소비세 부과 조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장석춘 자유한국당 의원실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2일 '한·인도네시아 자동차 대화'에서 한국 측은 인도네시아에 하이브리드차에 대한 특별소비세를 올릴 것을 요구했다.

지난 10월 인도네시아 정부는 하이브리드차에 대해서 2~8%의 특별소비세를, 내연기관에 대해서 15~40%의 특별소비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지침을 통과했다. 친환경 정책에 따라, 연비가 낮고, 이산화탄소(CO2)배출량이 많을수록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기로 하고 2021년 10월부터 시행키로 했다.

도요타가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판매중인 C-HR. [도요타 인도네시아 홈페이지 캡처]

도요타가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판매중인 C-HR. [도요타 인도네시아 홈페이지 캡처]

전기차의 경우 특별소비세가 0%다. 그러나 연비가 L당 23km를 넘는 하이브리드 차는 특별소비세 2%의 적용을 받는다. 두 차량의 차이는 세율 차이가 2%포인트만 나 실질적 판매가격은 원가가 높은 전기차가 더 비싸다.

한국 측은 "최근 개편된 인도네시아의 자동차 세제가 일본 기업이 우위를 확보한 하이브리드 차량 혜택에 편중되어 있어 현대차 투자 걸림돌이 되고 있어 개편이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인도네시아 측은 "세제개편이 완료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장 개편은 어렵다"며 "개편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답했다.

현대차는 10월 인도네시아 정부의 세제개편이 정해진 후 전기차에 대한 구매보조금을 하이브리드차보다 늘릴 것을 요청했지만, 현지 정부는 조세 수입을 이유로 답을 보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5대 브랜드 차 판매량.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난해 인도네시아 5대 브랜드 차 판매량.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현대차는 자사 하이브리드차를 현지에서 생산하는 방향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일본계 하이브리드차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당시 결정을 미뤘다.

결국 전기차 투자를 보류하고 내연기관으로 방향을 틀게 된 것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전기차 생산은 현지 인프라 상황 등을 고려해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동남아 전기차 허브를 목표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25년까지 전기차를 연간 판매되는 신차의 20%인 약 40만대까지 올린다는 계획이다.

그런데도 인도네시아 정부가 하이브리드 차와 전기차의 특별소비세를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한 이유로 전문가는 일본 차 업계의 영향력을 지목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Joko Widodo) 대통령과 지난 7월 25일(현지 시간) 자카르타 대통령궁에서 면담하고 상호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사진 왼쪽)과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Joko Widodo) 대통령과 지난 7월 25일(현지 시간) 자카르타 대통령궁에서 면담하고 상호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사진 왼쪽)과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도요타 등 일본차는 인도네시아 자동차 시장의 97%(지난해 기준)를 점유하고 있다. 일본차는 70년대 현지에 진출한 뒤, 정책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산업부 공무원 중에는 '일본 장학생'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양국의 관계가 깊다"며 "일본 차 업계가 인도네시아 차 산업에 대한 영향력이 커서 그에 따라 조세정책이 바뀌다 보니 현대차도 투자 딜레마에 빠졌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중국이나 독일 친환경차 정책에서도 하이브리드차가 상대적 우대를 받았는데 이도 일본정부와 차업계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정부와 현대차는 다만 조세 등 정책에 대해 재논의하기로 해 전기차 양산 가능성은 남아있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향후 양산 시점에 현지 정부가 전기차 구매보조금을 늘릴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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