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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길빵'하다 45명 걸렸다…단속반 뜨면 후다닥 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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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 금연거리 표지판(왼쪽). 12일 정오 무렵 서울 동작구 메가스터디타워 인근 골목길에서 흡연자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 골목길 끝부분부터 금연거리가 시작된다. 신혜연 기자

서울 동작구 금연거리 표지판(왼쪽). 12일 정오 무렵 서울 동작구 메가스터디타워 인근 골목길에서 흡연자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 골목길 끝부분부터 금연거리가 시작된다. 신혜연 기자

지난 12일 정오 무렵, 서울 노량진 메가스터디타워 뒷골목은 10여 명의 흡연자가 모여 뿜어내는 담배 연기로 가득했다. 동작구가 지정한 금연거리와 1m 거리에 있는 곳이다. 이 때문에 금연거리까지 담배 냄새가 퍼졌다.

몇 명은 구역 선을 넘어 금연거리 안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구청 단속반에 걸리면 과태료 10만원을 물어야 하지만, 이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검찰 공무원을 준비 중인 28살 A씨는 "이 근처에서 수업을 듣는데 금연거리 표시가 명확하지도 않고 습관처럼 그냥 이 자리에서 피운다"며 "내가 아는 학원 수강생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시행 8년째, 금연거리엔 여전히 담배 연기

금연거리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체적으로 지정하는 야외 금연구역이다. 소위 ‘길빵’이라 불리는 거리 흡연 탓에 생기는 간접흡연 피해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자체가 금연구역에 흡연 과태료 10만원을 부과할 수 있도록 국민건강증진법이 개정되면서, 2011년부터 마포·서대문·도봉·강남구 등은 ‘간접흡연 피해방지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각 구는 민원이 많은 곳과 학교 주변 거리를 중심으로 금연거리를 지정해왔다.

그러나 시행 8년차를 맞는 금연거리는 여전히 담배연기로 시름 중이다.

중앙일보가 서울시내 각 구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금연거리 흡연 단속 실적을 보면 올해 1~10월 서울 시내 전체에서 하루 평균 45.9건의 거리흡연이 적발됐다.

적발 건수가 가장 많은 곳은 영등포구(약 7700건)였고 송파(2294건)·노원(824건)·서초(777건)·광진(480건)구가 그다음으로 많았다. 반면 마포·강서·강북구는 단속 실적이 0건이다.

영등포구는 금연단속 직원 20명(서울 평균 4명)을 두고 있는게 단속 건수가 많은 비결로 꼽혔다. 송파구는 외국인 관광특구 특성상 금연거리인 줄 모르고 담배를 피우는 관광객들이 자주 단속된다고 한다.

반면 단속 실적 0건인 강서구 관계자는 "금연거리 단속 실적은 없지만, 본래 금연구역에 해당하는 발산역 주변에선 지난달에만 1447건을 적발했다"고 설명했다. 강북구는 "다른 구와 달리 지정된 금연거리가 한 곳이고, 이곳에선 특별한 불만 민원이 접수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서울 시내 금연 거리 흡연 단속 건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서울 시내 금연 거리 흡연 단속 건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금연거리 단속 담당자들은 흡연자들의 배려 부족을 한결같이 지적했다. 한 구청 담당자는 "흡연자들은 금연거리가 있으면 '피우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몰래 빨리 피우고 가야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12일 서울 동작구의 한 금연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던 한 공무원 준비생 B씨는 "5분 정도 걸어가면 흡연부스가 있긴 하지만, 솔직히 귀찮기도 하고 공부하는 입장에서 시간이 아깝기도 해서 그냥 여기서 피운다"며 "바닥에 꽁초도 떨어져 있다 보니 피워도 되는 곳인가 싶었다"고 말했다.

과태료 안 내려 도망가거나 욕하는 사람도  

단속 담당자들은 "길어야 2분 안에 끝나는 흡연 현장을 단속하는 게 쉽지 않다"고도 말했다. 중랑구청 관계자는 “신분증이 없다고 우기거나 도망가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단속반원들은 현장을 발견하면 사진부터 찍는데, 이마저도 위반자가 도망가면 신원 확인이 쉽지 않다고 한다.

중구청 담당자는 “단속에 불만을 품은 악성 민원인들이 전화해 욕을 한다"고도 했다. 그는 "우리 단속과만 ‘통화 내용이 녹음된다’는 통화연결음을 설정해뒀다. 한 번 욕설을 들으면 며칠간 잠을 못 이룬다. 제발 욕만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동작구청 담당자도 "한번 단속에 걸린 흡연자는 계속 전화를 걸어 ‘이 사람도 잡아가라’는 식으로 민원을 넣기도 한다"며 "밤에 단속된 흡연자가 계속 따라와 위협을 느낀 경험도 있다”고 털어놨다.

서울 성동구 성수역 인근 금연구역 표지판. 신혜연 기자

서울 성동구 성수역 인근 금연구역 표지판. 신혜연 기자

12일 오후 2시 성동구청 흡연단속반 유동맹씨가 금연거리를 걷고 있다. 단속 현장을 동행해보니 단속되는 사람마다 굳은 표정을 짓거나 나직이 욕설을 뱉었다. 신혜연 기자.

12일 오후 2시 성동구청 흡연단속반 유동맹씨가 금연거리를 걷고 있다. 단속 현장을 동행해보니 단속되는 사람마다 굳은 표정을 짓거나 나직이 욕설을 뱉었다. 신혜연 기자.

유씨가 늘 들고 다니는 기계. 현장에서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고 과태료를 결제할 수 있다. 성동구보건소 건강생활팀 변우애 주무관은 "과태료를 빨리 납부하면 할인해주기도 하고, 고지서가 집에 오기를 꺼리는 경우도 있어 현장 납부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신혜연 기자.

유씨가 늘 들고 다니는 기계. 현장에서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고 과태료를 결제할 수 있다. 성동구보건소 건강생활팀 변우애 주무관은 "과태료를 빨리 납부하면 할인해주기도 하고, 고지서가 집에 오기를 꺼리는 경우도 있어 현장 납부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신혜연 기자.

"금연거리 지정 이전에 충분한 논의 필요" 

금연거리 지정과 함께 주변에 흡연구역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마포구는 올해 단속 실적이 0인데, 이곳 관계자는 "금연거리 지정 전, 인근 빌딩에 흡연구역을 제공해달라고 협조 요청을 하고 계도 기간 동안 충분히 홍보한 덕인 것 같다"며 "이 때문에 단속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단속에 걸리는 사람이 생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마포구 담당자는 "금연거리는 한쪽 입장만 듣고 일방적으로 설정해선 안 된다. 흡연구역 설치를 위해 주변 상가, 주민들과 오랜 기간 협의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성수역 입구에 마련된 흡연부스. 12일 오후 2시 이곳을 이용한 김대한(35)씨는 "회사 바로 앞이라 애용하는 장소"라며 "조금 답답하긴 하지만 정해진 곳에서 눈치 안 보고 담배를 피울 수 있고, 비흡연자도 원치 않는 담배연기를 맡을 일이 없으니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신혜연 기자

서울 성수역 입구에 마련된 흡연부스. 12일 오후 2시 이곳을 이용한 김대한(35)씨는 "회사 바로 앞이라 애용하는 장소"라며 "조금 답답하긴 하지만 정해진 곳에서 눈치 안 보고 담배를 피울 수 있고, 비흡연자도 원치 않는 담배연기를 맡을 일이 없으니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신혜연 기자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이기영 교수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거리를 금연거리로 지정하면 간접흡연 피해가 줄어드는 건 사실"이라며 "흡연자들의 불편함은 이해하지만 전반적 사회 분위기로 볼 때 금연거리 지정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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