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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유재석과 유산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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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논설위원

김승현 논설위원

유산슬(溜三絲)은 가늘게 썬 육류와 해산물을 볶아 만든 중국요리다. ‘유(溜)’는 녹말 물을 풀어 걸쭉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 요리가 최근 느닷없이 인기검색어에 올랐는데, 그 이유가 황당하다. 같은 성씨(?)를 쓰는 ‘예능 일인자’ 유재석이 한 지상파 프로그램에서 유산슬이란 닉네임으로 트로트 가수에 데뷔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의 데뷔곡 ‘합정역 5번 출구’는 명곡의 반열에 등극할 기세다. ‘유느님’(유재석+하느님)의 인지도, 트로트계 베테랑의 작사·작곡, 기발한 연출(김태호 MBC PD)이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건 유산슬이 기존의 방송 문법을 철저히 무시한다는 점이다. 수십 년 동안의 관행과 경계를 허무하게 무너뜨린다. 경쟁사 아침 프로의 생방송 노래 경연에 출연하는가 하면, 200만 원대 초저예산 B급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길거리 버스킹을 한다.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유재석과 유산슬은 다른 사람”이라고 능청을 떤다.

지상파 예능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예능인과 PD의 선택은 가히 ‘창조적 파괴’라 부를 만하다. 낡은 것은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함으로써 경제 구조가 혁신된다는 죠셉 슘페터(1883~1950)의 이론이다. 방송·통신의 융합, 유튜브·넷플릭스가 대세인 시대에 이미 파괴당해 변방 플랫폼으로 밀려난 지상파 방송의 불가피한 변신일 수도 있다. 어쨌든 고비용·저효율의 한계 상황에서 ‘이제 뭔들 못하겠냐’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새로운 매체 환경에 이미 적응한 시청자들은 스타의 파격에 크게 놀라지도 않고 품어주듯 반긴다. EBS 소속 캐릭터 ‘펭수’가 섭외 1순위 방송 스타가 된 것도 그런 수용자의 포용력을 보여준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접고 당장 도전과 혁신을 해보라고, 유산슬이 된 유재석이 노래하고 있다.

김승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