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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피해 강조 일본에, 교황 '핵무기금지조약' 쓴소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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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24 일, 일본 나가사키 원폭 폭심지에 세원진 공원에서 헌화한 뒤 기도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 중이다. [ EPA=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4 일, 일본 나가사키 원폭 폭심지에 세원진 공원에서 헌화한 뒤 기도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 중이다. [ EPA=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4일 일본 나가사키 피폭지를 찾아 "핵무기 폐기에 모든 사람과 국가가 참여해야 한다"며 반핵 메시지를 발표했다.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지점(폭심지)에 세워진 공원에서 교황은 "핵무기와 대량파괴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평화와 안정을 향한 희망에 대한 해답이 아니다"며 "무기 제조와 개량은 터무니없는 행위"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4일 나가사키 피록지에 헌화하고 있다. 앞 사진은 피폭이후 생존한 어린이의 기록사진.  [로이터=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4일 나가사키 피록지에 헌화하고 있다. 앞 사진은 피폭이후 생존한 어린이의 기록사진. [로이터=연합뉴스]

교황은 "핵무기에서 해방된 평화로운 세계를 수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열망하고 있다"며 "핵무기가 없는 세상은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환영을 받으며 일본 나가사키 야구장에 도착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환영을 받으며 일본 나가사키 야구장에 도착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나가사키 야구장에서 한 어린이의 손을 잡고 있다. [ EPA=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나가사키 야구장에서 한 어린이의 손을 잡고 있다. [ EPA=연합뉴스]

프란키스코 교황이 나가사키 야구장에 도착해 한 어린이에게 밉맞춤을 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프란키스코 교황이 나가사키 야구장에 도착해 한 어린이에게 밉맞춤을 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1945 년 8 월 9 일 원자 폭탄에서 살아남은 성모 마리아 동상인 '나가사키의 마돈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나가사키 야구장 미사에 함께 모셔졌다. [로이터=연합뉴스]

1945 년 8 월 9 일 원자 폭탄에서 살아남은 성모 마리아 동상인 '나가사키의 마돈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나가사키 야구장 미사에 함께 모셔졌다. [로이터=연합뉴스]

또한 교황은 핵무기의 개발·실험·생산·제조·비축·위협 등 모든 핵무기 관련 활동을 포괄적으로 금지한 유엔(UN) 핵무기금지조약(TPNW)의 비준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교도통신은 핵무기금지조약에 참가하지 않고 있는 일본 정부를 향한 '쓴소리' 발언으로 해석했다.

중국 국기를 펼쳐든 신자들이 나가사키 야구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환영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국기를 펼쳐든 신자들이 나가사키 야구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환영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본은 유일한 피폭국이라며 국제 사회에 '핵무기 없는 세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핵무기금지조약에 대해서 찬성하지 않고 있다.

[서소문사진관]

일본 여학생들이 24일 프란치스코 일본 방문을 알리는 호외 신문을 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일본 여학생들이 24일 프란치스코 일본 방문을 알리는 호외 신문을 보고 있다. [AP=연합뉴스]

교황은 성(聖) 프란시스코의 '평화의 기도'를 올렸다. '평화의 기도'는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이라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이어 그는 "이 기도가 우리들 모두의 기도가 될 것을 확신한다. 무관심에 쓸려나가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이 장소를 기억에 남기자"고 말했다.

한편,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의 피해자는 대략 70만 명(히로시마 42만여 명, 나가사키 28만여 명)이고, 그중 10%인 7만여 명(히로시마 5만여 명, 나가사키 2만여 명)이 한국인이다. 한국인 피폭자 가운데 살아남은 자는 약 3만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중 고국으로 돌아온 2만 3천여 피폭자들은 한국과 일본 정부로부터 이렇다 할 만한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지금도 질병과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1991년 17억 엔, 1993년 23억 엔을 받았고, 일본이 발행한 ‘피폭자 건강수첩’을 소지한 사람에 한 달에 10만 원의 진료비, 사망자 유가족에게 장례비 70만 원을 지급했을 뿐이다.

 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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