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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일가족 지원 '석달만에 끝'…연장 신청 없어 심사 안했다

중앙일보

입력

A씨(49·여) 일가족 등 4명이 숨진 채 발견된 인천시 계양구의 한 아파트에 이들이 주문한 택배 박스가 여러 개 쌓여있다.심석용 기자

A씨(49·여) 일가족 등 4명이 숨진 채 발견된 인천시 계양구의 한 아파트에 이들이 주문한 택배 박스가 여러 개 쌓여있다.심석용 기자

21일 오전 11시 인천시 계양구의 한 아파트. 복도 끝에는 폴리스 라인이 처져 있었고 그 앞에는 택배 박스 여러 개가 쌓여 있었다. 박스 옆에는 음식물 쓰레기가 담긴 검은색 비닐봉지가 묶이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폴리스 라인 너머로는 여행용 가방, 우산 등 생필품들이 보였다.

이곳은 지난 19일 A씨(49·여) 일가족 등이 숨진 채 발견된 곳이다. A씨 가족은 8~9년 전부터 이 아파트에 거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은 지난 19일 낮 12시39분쯤 인천시 계양구 한 아파트에서 숨져있는 A씨와 아들(24), 딸 B씨(20), 딸의 친구 C씨(19)를 발견했다. 이날 오전 A씨로부터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문자를 받은 A씨의 지인이 119에 신고했다. 출동한 소방당국은 거실에서 A씨와 B씨, C씨가, 작은 방에서 A씨의 아들이 숨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경제적 어려움 등 토로하는 내용 담겨

현장에서는 이들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장의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A씨 가족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과 A씨가 건강상 문제를 토로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1일 A씨 등을 부검한 결과 “가스 질식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1차 구두소견을 경찰에 전달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A씨는 수년 전 남편과 이혼한 뒤 자녀 둘과 함께 생활해왔다. 그는 바리스타로 일하다가 손이 떨리는 증상으로 지난해 실직한 이후 최근까지 직업이 없었다. 몸이 불편했지만, 우울증 등의 증상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의 아들도 무직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딸은 다니던 대학교를 휴학한 것으로 파악됐다. 딸 B씨와 고등학교 동창인 C씨는 대학생으로 부모가 지방에 거주해 수개월 전부터 A씨 집에서 숙식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복지사각지대 맞나?

[연합뉴스]

[연합뉴스]

A씨 가족 등이 생활고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들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계양구 등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0월 기초주거급여대상자로 선정됐다. 최근까지 주거급여로 매달 평균 24만원을 받았다.

주거급여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라 주거 안정이 필요한 기초생활보장수급자에게 지급된다. 본인이 신청한 뒤 소득·재산 등이 대상요건에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대상자로 정해진다. A씨는 중위소득의 50% 이하인 차상위계층에 주어지는 통신료, 상수도 요금, 도시가스 요금 감면 등의 지원도 받았다고 한다.

실직 이후에는 SOS 복지 안전벨트를 통해 긴급복지 지원금을 매달 95만원씩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형 긴급복지제도인 SOS 복지 안전벨트는 현행법과 제도로 지원받기 어려운 위기상황에 놓인 시민에게 생계유지를 위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기본적으로 3개월간 지원되고 심의를 거쳐 연장 여부가 결정된다. 그러나 A씨는 연장신청을 하지 않았고 연장 심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A씨 가족은 아파트 관리비 등을 체납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맞춤형 지원 가능한 돌봄체계 갖춰야”

계양구 측은 복지위기 가구에 대한 보건복지부 캠페인 외에도 주민 발굴단, 보장 협의체 등 복지 사각지대를 막기 위한 인적 망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역 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8000세대가 넘고 차상위계층이 4000세대에 가까워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쉽지 않다고 한다.

허준수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빈곤층임에도 아파트와 일정 자산이 있어 지원 대상자에 선정되지 못해 생계급여 등을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긴급복지지원제도를 마련했는데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면서 “긴급복지지원제도를 통해 지원하는 급여와 기간을 현실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급여 제공에 그치지 않고 각 구성원이 가진 복지적 욕구에 맞게 맞춤형 지원을 할 수 있는 지속적인 돌봄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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