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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의 날' 정부 제안? 중국에만 좋은 일 하는 셈"

중앙일보

입력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건국대 김윤신 교수. 김정연 기자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건국대 김윤신 교수. 김정연 기자

지난 9월 유엔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푸른 하늘의 날’을 지정하자고 제안했다.
갑자기 ‘푸른 하늘’이라니? 단어 선택도, 제안한 시점도 갑작스러웠다. 대체 어디서 갑자기 나온 발상일까 궁금했다.

10년 간 '공기의 날' 추진한 김윤신 교수 #"타당한 근거 부족, 외교적 수사일 뿐"

2010년부터 ‘공기의 날’을 만들기 위해 국내에서 활동해온 김윤신(70) 건국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를 지난 7일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물의 날, 토양의 날 있는데 '공기의 날' 없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24일 오후(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제74차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푸른 하늘의 날' 제정을 제안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24일 오후(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제74차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푸른 하늘의 날' 제정을 제안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 교수는 “세계 물의 날, 세계 토양의 날은 있는데 세계 공기의 날은 없더라. 전 세계 사람들이 공기의 중요성을 알게 하려면 유엔 지정 기념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2010년부터 ‘공기의 날’ 지정을 추진해왔다”며 “산소의 화학식인 O2를 닮은 10월 22일을 골랐다”고 설명했다.

2016년부터는 사단법인 '세계 맑은공기연맹(GACA-Global Alliance for Clean Air)'을 만들어 '공기의 날'을 홍보해왔고, 지금은 세계에서 대기오염이 가장 심한 중국·인도·몽골을 포함해 미국·일본·싱가포르·태국 등 8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다.
‘공기의 날 위원회’는 매달 만나고, 오는 28일에는 ‘공기의 날 발전 방안’ 콘퍼런스도 개최할 예정이다.

김 교수는 앞서 김숙 전 유엔대사 재임 시절인 2011년 ‘공기의 날’ 지정 신청을 추진했으나, “워낙 기념일 심사 신청이 많아서 한국 정부가 신청해서는 승인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조언을 김 전 대사로부터 듣기도 했다. 사실 유엔 ·지정 기념일은 150여 개가 넘는다.

김 교수는 가장 최근인 2013년 ‘세계 토양의 날’이 지정된 방식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세계 토양학회가 추진해오던 ‘세계 토양의 날’을 2012년 푸미폰 태국 국왕이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제안했고, 2013년 '세계 토양의 날'로 지정됐다.

김 교수는 “한 나라의 대표 격인 왕이 힘을 실어주고, 그 뒤에 전문 학회의 오랜 연구와 활동 근거가 받쳐줬기 때문에 1년 만에 기념일 지정이 될 수 있었던 사례”라고 설명했다.

"'푸른 하늘의 날'? 좁은 시각, 중국에만 좋은 일"

김윤신 교수, [중앙포토]

김윤신 교수, [중앙포토]

김 교수는 지난 8월 외교부·환경부·국가기후환경회의 관계자들과 만난 원로 자문회의에서도 ‘공기의 날’에 대해 설명했다.
이후 지난 9월 문 대통령이 제안한 ‘푸른 하늘의 날’은 그가 추진해온 ‘공기의 날’과 개념은 일맥상통하지만, 김 교수는 “‘푸른 하늘의 날’ 은 외교적 수사(修辭)에 불과한, 적절치 않은 이름”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중국은 온갖 환경 관련 NGO(비정부기구)의 이름에 ‘블루스카이’가 들어간다”며 “외교부는 ‘중국이 푸른 하늘 단어를 좋아하니 중국의 협조를 얻기 좋다’는 이유로 저 단어를 골랐다고 하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중국이 ‘우리가 원래 오래전부터 블루스카이를 써왔다’며 지분을 주장하면 반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중국에만 좋은 일 해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 환경부가 중국 정부와 함께 진행할 예정인 대기 질 공동연구사업 이름도 ‘청천(靑天, 푸른 하늘, blue sky) 프로젝트’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 [중앙포토]

미세먼지로 뒤덮인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 [중앙포토]

그는 “유엔의 환경 관련 날들은 ‘세계 물의 날(3월 22일)’ ‘세계 토양의 날(12월 5일)’ 등이 있는데 ‘푸른 하늘’은 이들과도 급(級)이 맞지 않고, 미세먼지로 인한 ‘뿌연 하늘’은 대기와 관련된 여러 문제 중 하나일 뿐인데 ‘푸른 하늘’은 오로지 미세먼지에만 초점을 맞춘 좁은 시각의 이름”이라며 “단순히 외교적 실적을 내려고 서두르다 보니 타당성을 충분히 따져보지 않고 내놓은 제안”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환경부·외교부 등에도 이런 의견을 전달했으나 변화가 없었다"며, 세계대기연합회의 이름으로 ‘공기의 날’ 기념일 신청을 내년이나 내후년쯤 따로 할 생각이라고 한다.

1984년에 '초미세먼지' 연구, PM10 기준도 이 사람이 만들었다

1984년 김윤신 교수 텍사스대학교 박사 논문. [사진 김윤신 교수]

1984년 김윤신 교수 텍사스대학교 박사 논문. [사진 김윤신 교수]

김 교수는 1984년도 미국에서 초미세먼지를 다룬 박사 논문 "휴스턴 시 실내외 초미세먼지의 발생원 및 성분 구성에 관한 정량적 연구'를 펴냈고, 94년 환경부가 미세먼지(PM10) 환경기준 도입 논의도 총괄했다.

현재 전 세계 미세먼지‧초미세먼지 연구의 기초 격이 되는 연구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15년간 진행한 ‘6개 도시 연구'다. 미국 내 6개 도시에서 성인 8000명, 소아 1만 4000명을 14~16년 동안 관찰한 뒤 대기오염이 질병과 사망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미국 환경보호국(EPA)이 97년 처음으로 초미세먼지(PM2.5)의 환경기준을 만들게 한 근거가 된 자료다.

김 교수는 텍사스대에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던 중 당시 연구를 진행하던 하버드대 교수의 강연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건통계‧역학 분야의 인력이 필요하다는 제안에 하버드대 연구에 합류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은 한 가지 연구를 10개 연구소에 똑같이 시키고 10년간 지켜본 다음 결과물을 내더라. 그래서 15년간 진행한 6개 도시 연구 같은 것도 나올 수 있는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지속적 연구가 안 된다. 내가 가르쳤던 학생 중에서도 미세먼지 연구를 계속하는 사람이 없다”며 한탄했다.

"내가 기관지가 예민해서…공기 질 문제 붙들고 온 동력"

김윤신 교수. [중앙포토]

김윤신 교수. [중앙포토]

김 교수는 “대기환경학회, 실내환경학회 등 대부분 분야에서 거의 처음으로 학회를 만들었기 때문에 대부분 3년 이내에 크게 성장했는데, ‘대기의 날’만 좀 지지부진했다(웃음)”며 “수질오염, 토양오염, 쓰레기, 이런 건 눈에 확 보이지만 공기는 눈에 확 보이진 않으니까 사람들이 다들 공기 질의 중요성을 크게 못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10년간 뚜렷한 결과물이 없었지만 ‘공기의 날’을 밀고 올 수 있었던 동력은 뭘까.
그는 “어렸을 때부터 기관지가 약해서 공기 질에 굉장히 예민했다. 지난겨울에는 정말 못 살 정도로 힘들었다”며 “형은 유명한 암 전문가인데(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김의신 교수) 200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 사람들 폐 CT 사진은 환자가 아니어도 미세염증이 조금씩 다 있더라’는 말을 해주기도 해서 ‘대기오염이 정말 큰 문제다’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전했다.

수도권 지역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엿새째 이어진 지난 3월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주변에 미세먼지가 가득하다. [연합뉴스]

수도권 지역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엿새째 이어진 지난 3월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주변에 미세먼지가 가득하다. [연합뉴스]

김 교수는 올해 환경부가 발표한 미세먼지 대책에 대해서 “기존 대책과 달라진 게 없다”며 “대기 중 오염물질 저감은 원천 발생원을 확 줄이지 않으면 표가 나지 않으니, 반짝 효과를 낼 수 있는 실내 공기정화 정책에만 돈을 많이 들인다”고 비판했다.

그는 “반발을 감수하면서라도 키를 쥔 환경부가 좀 더 과감하게 정책을 내디뎌야, 진짜로 효과적인 ‘오염물질 저감’이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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